민족의 영산,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 숨쉬는 중국 단동 여행 

즐거운 주말~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오붓하게 거실에 앉아서 주말 프로그램을 보는데요^^ 어떤 주말 드라마를 즐겨 보시나요? 전 요즘 광개토대왕이 재밌더라구요~ 저희 가족은 광개토 대왕시간만 되면 거실로 하나둘씩 모여든답니다. 만주 벌판을 호령하며 영토를 넓혔던 광개토대왕을 생각하며, 오늘은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 숨쉬는 중국 단동으로 떠나볼게요!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단동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단동페리’는 1998년 7월24일, 첫출항 인천 ↔단동간 여객 및 화물운송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11,000톤급 여객선으로 Rolling방지 및 횡추진 장치로 승객의 안전과 정확한 화물운송으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인천항에서 출발, 주3회(월,수,금) 운항하고 있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볼게요! 일주일간 다녀올 수 있는 5박 6일 코스로 계획해보았어요 ^-^ 일정은 개인적인 취향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경 가능하다는 사실~

1일

[15:00] '인천항 제1국제여객 터미널

[17:00] 인천항 출항

단동페리(ORIENTAL PEARL Ⅵ)

2일

[09:00] 단동 동항 도착

▶신의주, 위화도, 월량도 등 북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압록강공원'

▶우리나라 아픔의 현장 6.25 당시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 '압록강 단교'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환인(졸본성)으로 이동

▶천혜의 요새인 '오녀산성' 조망

3일

송강하로 이동 후 백두산 관광

▶화산으로 인해 나무가 그대로 숯이 되어버린 '탄화목유적'

▶백두산 화산폭발로 용암이 흐른 자리에 생긴 '압록강 대협곡'

▶원시림 속에 자리 잡은 50m의 아름다운 폭포 '악화폭포'

▶고산지대에서 수목이 존재할 수 있는 '수목한계선' 차장 관광

▶4호경계비, 관면봉(2,656m)에서 [백두산 천지]

4일

고구려의 2번째 수도였던 [집안(集安)(국내성)]으로 이동

▶거대한 크기와 빼어난 조형미로 동방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장수왕릉] 관광

▶424년간 고구려 수도로 있었던 '국내성 성터'

▶수도 방어의 요지 '환도산성' 원경조망

▶압록강변에서 '북한 방산마을' 조망.

5일

단동으로 이동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볼 수 있는 '항미원조기념관' 관광.

▶단동시민들의 공원 '금강산 공원' 관광.

[14:30] 단동 동항 국제여객 터미널 도착 후 수속 및 승선

[16:30]단동 동항 출발

6일

[09:00] 인천 연안 부두 도착

단둥은 ‘동쪽을 붉게 물들인다’는 뜻입니다. 옛 이름은 안동이었고, 1965년에 단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압록강 하구 부분의 신의주 바로 맞은 편에 있으며,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한반도와 만주, 중국을 잇는 길목이어서, 역사상 한중 관계의 많은 사건들이 바로 이곳, 단둥에서 벌어졌어요. 

고구려가 조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자 공략했던 서안평이 있고, 고구려의 방어선을 넘기 위한 당군의 기습도 이곳에서 벌어졌답니다. 

또한 단둥과 신의주 사이에 있는 ‘위화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도 유명하죠.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통로로도 그 의미가 깊었어요.

 

1.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다리, 압록강 단교

 ‘동양 제일의 국경 명물’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압록강 철교는 1911년 조선 총독부에 의해 건설된 압록강 최초의 철교입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도중 미군에 의해 폭파되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당시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압록강철교가 군사적 요충지로 부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미군의 8-29기가 이 철교를 폭격하게 되었고, 지금 이 다리는 당시의 상흔을 간직한 채 압록강 단교(斷橋)고 불리고 있습니다. 중국쪽의 4칸의 다리는 그대로 보존되어 역사적 아픔을 보여주고 있죠.

1943년 5월에는 압록강 철교에서 상류 쪽으로 70m 지점에 신철교(新鐵橋)가 복선으로 건설되고 943.3m로 개통되었는데, 이 다리는 현재까지도 ‘조중친선우의교’라는 이름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후에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차들이 통행하고 있어요. 

 

2. 오녀산성

 

오녀산성(五女山城) 또는 흘승골성(紇升骨城)은 요녕성 본계시 환인현 오녀산에 위치한 산성입니다. 고구려 초기의 성곽으로, 동명성왕이 처음 고구려를 건국할 때 쌓은 도읍으로 비정되고 있으나 고고학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하네요. 오녀산의 북쪽과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고 험한 해발 800미터 높이에 이르는 절벽의 천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성곽을 쌓은 점이 특징입니다. 이는 고구려 특유의 축성 양식이며, 현재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뫼식 산성입니다.

오녀산성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흘승골성이라고 처음 언급되고 있는데요. 고구려인이 만든 ‘광개토왕릉비’에는 홀본성이라고 하고 있고, 삼국사기에는 졸본성이라고 불렸으며, ‘고려사’공민왕조에는 오로산성 또는 우라산성이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남북 길이 1500m, 동서 너비 300m이고, 전체 약 8km입니다. 200m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연의 요새가 되어 고구려 멸망 이전에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성이랍니다.

 

3. 악화폭포

 

백두산의 폭포는 60여개 정도입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악화폭포는 백두산 동쪽 비탈 삼도백하 상원에 있습니다. 이 폭포는 태원대와 사스래 나무림대(악화림)의 교계처에 있어서 악화폭포라고 부릅니다. 악화 폭포는 급류가 불시에 20여m 되는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이루어지는데, 먼 곳에서 바라보면 흰 비단이 하늘에 걸려 있는 듯합니다.

산세가 우아하고 고화음에 덮힌 장백산 아래에 위치한 악화폭포는, 멀리서 바라보면 벼랑에 걸린 듯하고 가까이에서 보면 흰 눈을 뿜은 듯해서 이 기상한 풍경을 『안도현지』는 이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달아놓은 듯한 호수는 멀리서 보면 흰 구름에 휩싸여 있고 흰 비단이 구름 속에서 흰 비단이 공중에서 흩날리는 듯하다. 역시 천연적인 절승경개로구나! -『안도현지』

 

4. 백두산 천지

호수면 해발 2,190m, 면적 9.165㎢, 둘레 14.4㎞, 평균너비 1.975㎞, 최대너비 3.550㎞, 평균수심 213.3m, 최대깊이 384m의 분화구입니다. 화산활동에 의해 백두산 화구가 함몰된 후 융설수·우수 등이 고여 생긴 칼데라 호로, 분화구의 전체면적 가운데 천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6%에 이르구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50m)을 비롯해 망천후(2,712m)·백운봉(2,691m)·청석봉(2,662m) 등 높은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예로부터 대택·대지·달문지라고도 했으며, 99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어요. 높이가 560m에 이르는 절벽으로 된 화구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고, 호수물은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을 통하여 흘러내려 비룡폭포(68m), 창바이 폭포[長白瀑布:70m]를 이루면서 쑹화 강[松花江]의 상류인 만주의 얼다오바이허 강[二道白河]으로 흘러갑니다. 물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약 3m의 두께로 어는데 그 위에 쌓이는 눈의 두께까지 합하면 6m 이상이나 됩니다.

호수는 수온이 낮아 어류가 서식하지 않고, 식물성 부유생물 5종(種), 작은 동물 및 곤충류 4종, 이끼류 등이 서식하고 있어요. 호수 주변에는 만병초·좀참꽃을 비롯한 12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북쪽 기슭에는 지름이 50㎝ 이상 되는 온천이 3개 있으며, 그보다 규모가 작은 것도 수십 개 있는데 황화수소, 탄산 가스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건강에 좋다고 하네요. 주변의 사계절 경관이 뛰어나며, 백두산 관광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물이 맑고 푸른빛을 띠므로 가을에는 물 속을 14m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합니다.

 

5. 장수왕릉

집안(集安)에 남아있는 만 2천여개의 묘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능으로 거대한 크기와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어 동방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릉입니다. 밑변의 길이가 32미터,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형 방단계단적석묘(方壇階段積石墓: 돌을 계단형식으로 네모지게 쌓아올린 형태의 무덤)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길이가 5.7미터인 엄청난 크기의 화강암 1100여개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는 특징이 있죠!

정면은 국내성 (集安)을 바라보는 서남향이며 네 귀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석실 안 석관의 머리 방향이 53도로 북동쪽에 있는 백두산 천지 (白頭山 天池)를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군총의 맨 위층인 제7층의 사방 변두리에서는 난간 구멍이 있는데 피라밋 위에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인 시설로 보이는 일종의 향당 (享堂)이 있었던 흔적으로 추정된답니다. 이는 고대 동이민족이 세운 나라에서 유행하던 묘제의 하나입니다.

수많은 고구려 고분들 가운데 이 장군총에는 특별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이 적석총을 둘러싼 12개의 받침돌(호석 護石)과 주변의 배총 (陪塚)입니다. 받침돌 혹은 호석은 돌을 쌓아 올린 무덤이 빗물이나 기타 외부압력에 인하여 밀려나거나 무너짐을 방지하기위해 세운 것으로 3개씩 4면에 총 12개가 있는데 십이지신상의 기원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현재는 그 중 하나가 소실된 상태입니다. 배총은 현재 하나만 남아있는데 과거에는 이 장군총의 네 모서리 방향에 있어 피라미드의 스핑크스처럼 수호신을 상징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고인돌형태로 남아있어요.

 

6.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 : 지금의 지안 현 퉁거우)의 동쪽인 국강상(國岡上)에 있는 광개토왕릉 동쪽편에 세워진 비입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줄여서 '호태왕비'라고도 하죠!

비가 있는 곳의 현재 지명은 압록강 북안(北岸)인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 퉁거우 진[通溝鎭] 타이왕 향[太王鄕] 타이왕춘[太王村]인데요. 주변에는 대형고분과 성터를 비롯한 많은 고구려 유적이 산재해 있습니다. 현재 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있는 태왕릉(太王陵)을 광개토왕의 능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부근에서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에요^^

비는 커다란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으로 된 불규칙한 직4각형의 기둥 모양으로 된 4면비로, 남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세워져 있습니다. 높이는 6.39m로 윗면과 아랫면은 약간 넓고 중간부분이 약간 좁고, 아랫부분의 너비는 제1면이 1.48m, 제2면이 1.35m, 제3면이 2m, 제4면이 1.46m입니다. 아래에는 화강암의 받침대를 만들었는데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4각형이고, 두께는 약 20cm이나 고르지 않습니다.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해 비면에 가로·세로의 선을 긋고 문자를 새긴 점이 특징이에요.

문자는 비의 4면에 모두 새겨져 총 44행 1,755자로, 이중 마멸되어 전혀 판독할 수 없는 것이 약 140여 자에 이르고, 중국 학자 왕젠췬〔王健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제1면은 11행 449자, 제2면은 10행 410자, 제3면은 14행 574자, 제4면은 9행 369자로 구성되었다고 하네요. 각 문자는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에 가까운 서체를 사용하여 장중하고도 위엄이 있어 고구려 독자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합니다. 그리고 문자의 크기는 균등하지 않으나 대략 가로·세로가 14~15cm 안팎이며, 이체자(異體字)와 간체자(簡體字)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발견된 이후부터 줄곧 주목을 받아왔고, 지안 현 지사였던 유천성(劉天成) 등의 모금으로 비바람의 침식을 막기 위해 1928년에 2층으로 된 비각을 설치한 적도 있습니다. 이 비각은 1976년에 낡아서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하여 철거되고, 1982년에는 중국 당국에 의해 대형 비각이 세워져 지금에 이른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