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개인의 각성으로 진보한다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김형민 지음
1987’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1987년의 엄격한 군사정권 아래서 서울대 학생 고(故) 박종철 군이 경찰에 의해 ‘남영동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됐다. 물론 민주화가 된 지금처럼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같은 법적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닌 마구잡이 연행이었다. 연행된 그는 학생 운동권 선배의 행적을 추궁하며 <물고문>을 하던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축소 은폐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고문치사사건’에 관여했던 검사, 기자, 부검의, 교도관, 수감 중이던 저항 정치인, 종교지도자 등의 용기 있는 저항으로 이 사건의 진상이 국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지게 됐다. 이에 대학생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대적인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일명 ‘넥타이 부대’로 불렸던 직장인과 시민들까지 합세했다.
이 과정에서 연세대 학생 고(故) 이한열이 진압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국민들의 저항 물결은 더욱 거세졌고, 군사정권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화 조치를 발표하게 됐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누르던 독재정권에 국민이 승리했던 순간’까지다. 물론 이 역사의 흐름 속에는 1986년 저항의 이정표로 역사에 기록된 ’5.3 인천 사태’가 있었다.
역사는 때때로 히틀러와 같은 예측 불가 돌연변이에 의해 퇴보하기도 한다. 퇴보한 역사는 깨어있는 시민(개인)의 작으나 용기 있는 몸짓들이 모여 저항의 강물을 이루면 다시 진보를 향해 방향을 튼다. 퇴보와 진보를 반복하는 듯 보이면서도 역사는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진보의 동력은 영향력 있는 몇몇 지도자가 아니라 각성한 개인(시민)들로부터 나온다.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던 ‘최순실 일당’을 축출하고 민주정권을 세운 ‘촛불 시민’의 물결이 그것을 역력하게 증명한다.
김형민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1.2”는 큰 역사적 사건의 학문적 이론이나 해석보다 퇴보하(여려)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당랑거철(螳螂拒轍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사마귀)처럼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개인(시민)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천 년 우리 역사와 세계사 곳곳에 숨어 있는 ‘촛불 시민’이나 ‘역사 거인’이 주인공이다. 교과서나 언론을 통해 접한 적이 없어 몰랐던 ‘숨은 역사와 인물’ 열전이다. 그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생소한, ‘그런 사람, 그런 사연이 있었어?’란 질문이 앞서지만 읽다 보면 보잘것없는 개인의 역사를 지키려는 큰 몸짓들이 진한 감동과 각성을 일으킨다.
물론, 역사의 주류인 왕후장상, 정승 판서, 장군 열사의 이야기들도 함께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깊이와 넓이가 발군이다. 무엇보다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다른 역사서와 달리 중학생 딸이 쉽게 이해하도록 대화체의 친절한 설명이라 그렇다. 대학 때 역사학도였던 저자, 합리적인 역사 인식, 방대한 독서량,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 현직 방송국 PD로서 ‘긴급출동 SOS 24’ 등을 제작하면서 목격한 현재 백성의 삶이 시공을 초월해 결합함으로써 가능한 역동성과 입체성이 그 비결로 보인다.
서기 627년 신라 진평왕 49년에 대기근이 들었다. 나라의 곡식을 관리하던 창예창 관원들이 곡식을 빼돌리자고 모의할 때 의로움을 지키기 위해 이를 고발하고 죽음을 택했던 하급 관리 ‘검군’이 있었다. 저자는 감군의 이야기를 현재 ‘적폐 청산’의 중심에 선 현직 검사 ‘윤석열’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굽기보다 곧기를 택한 검군, 그리고 검사 윤석열’이 1권 4편의 제목이다. 방송인 김제동 씨의 시민계몽 활동을 빗대 자유의 나라 미국의 ‘빨갱이 사냥’ 역사인 ‘매카시즘’과 헌법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영화 ‘타임 투 킬’(1996)을 빌어 여성 차별의 역사를 설명한다.
미국 트럼프 직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인종차별의 범죄 현장에서 연설 도중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는 동영상과 굴뚝에 올라가 목숨 걸고 투쟁하는 한국의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를 버무려 ‘차별과 인권’을 이야기한다. 고인이 된 전설의 미국 흑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한국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투수 최동원의 공통점(2권 41편)을 읽으면 스포츠를 뛰어넘어 차별에 저항했던 불세출의 두 영웅에게 새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최후의 20세기 인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파라과이를 파멸로 이끈 독재자 로페스’까지 그의 역사 이야기는 ‘한국사’에 그치지 않고 세계를 종횡으로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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