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정문



누구나 한번 쯤 인천이라고 하면 가봤을 법 한 곳, 바로 차이나타운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난 곳인데요. 인천개항 후의 모습을 잘 나타낸 차이나타운 안에는 4곳의 박물관이 그 이야기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4곳의 박물관을 살펴보며 인천개항과 변화의 역사를 스케치 해보려고 합니다. 


인천개항과 변화의 모습을 잘 나타낸 박물관에는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짜장면 박물관, 한중문화관 이렇게 4곳의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럼 한 곳씩 저와 함께 살펴 보시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인천개항박물관입니다. 인천개항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었던 것은 인천개항장의 전경과 인천 거리의 변화였습니다. 인천의 최초 항만 시설이었던 제물포항은 초기에 입지여건이 좋지 않았고,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이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883년 외세에 의한 강제 개항으로 문호가 열려 우리나라 개화의 선구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계획에 의해 일본, 청국, 각국 공동조계지가 조성되어 서구 문물 유입의 길목이 되었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2 * 인천개항장의 전경



박물관 내에는 인천개항 후의 다양한 서구 건축물과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문화유산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최초의 근대식 공원, 호텔, 극장, 주택, 화폐, 우편, 전화, 등대 등 수 많은 근대 문물의 역사와 호흡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화폐



최초 근대식 요소 중 가장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 건 바로 화폐와 사진, 우편인데요.


인천개항박물관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 자리에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생산된 금괴 및 사금의 매입업무를 담당하였으며 한국 최초로 예금과 대출 등 은행의 고유 업무를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892년 일본에서 수입되는 주화용 원료 운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인천전환국이 설치되었습니다. 인천전환국의 설치로 화폐를 본격적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화폐 제조를 계기로 일본과 많은 교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인천과 서울사이에 처음 도입된 우편제도, 통신제도 덕분에 먼 거리를 오고 가지 않아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우편과 통신제도를 착안하여 최초 경인선 기관차가 탄생하게 됩니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었습니다. 19세기 유럽열강은 자원과 노동력 확보를 위한 식민지 건설을 목적으로 동아시아 3개국(일본, 중국, 조선)의 문호개방을 요구하게 됩니다. 


1883년 인천개항과 함께 외국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제물포항은 일본을 시작으로 청국,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차례대로 통상조약을 맺게 됩니다. 제물포는 통상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각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로 변화하게 되는데요. 각국의 상인들이 몰려오고 무역상이 자리 잡으면서 개항장에는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 할 수 있는 조계지가 생겨나게 되고 그에 따라 외국인들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의 주택이나 건물 모습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근대건축전시관에서는 그러한 영향을 받은 이국적인 느낌의 서구식 건축물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근대문명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 했습니다. 



* 짜장면을 먹는 노동자(쿨리)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짜장면 박물관이었습니다.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먹는 식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는데요. 인천이 개항되면서 청국조계가 설정되고 많은 화교들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일본이 무역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룬 반면에 중국경제는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화교들이 부두 노동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부족한 시간을 극복하고자 값싸고 손쉬운 음식을 찾게 되는데 그 음식이 바로 작장면입니다. 물론 화교들도 다 어렵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청국조계지에 거주하고 있던 화교들은 일본 세력을 견제하려는 청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청국에서 식료품과 잡화류를 수입하고 조선의 해산물을 수출하는 무역을 통해 많은 이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청일전쟁과 한일병합을 거치면서 청국경제는 쇠퇴하지만 요식업과 고유의 문화를 지키려는 화교들의 노력으로 독보적인 지역문화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 중 바로 작장면이 요식업에서 큰 흥행을 일으키게 된 것이지요.



* 작장면



작장면은 우리가 즐겨먹는 오늘날 짜장면과는 맛이나 재료가 다릅니다. 작장면은 물기가 부족하여 비벼먹기가 어렵지만 짜장면은 춘장이 첨가 되면서 달콤한 맛이 나는 차이점을 보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짜장면을 먹다보면 이것이 중국음식인지 한국음식인지 구별이 안 갈 때가 있는데요. 짜장면 박물관이 증명하듯 많은 역사적 근거를 볼 때 짜장면은 중국 음식을 토대로 국내에 거주하는 화교가 만든 한국 음식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다.



*한중 문화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한중문화관입니다. 한중문화관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생활상을 서로 비교를 해 볼 수 있는 박물관인데요. 인천 개항 후 중국과 한국이 서로 어떤 물품을 주고 받았고,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옛날 도자기, 수공예품, 옷, 음식, 건축물, 취미생활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과 닮아있다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 도자기                                                       *중국 도자기



또한, 일부 화교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악기 다루는 법, 공예품 만드는 법, 놀이를 재미나게 하는 법 등을 알려 자기 문물을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해왔다고 합니다. 한중문화관을 통해 한국과 청국 간의 교류를 통한 영향력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개항이후의 변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소개해드린 4곳의 박물관에 방문하시어 개항시대와 그 이후의 변화 모습을 살펴보시는 기회를 가지시길 바라며, 다음번에 더 좋은 기사로 찾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특파룡 유재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