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빛낸 대한민국 펜싱, 종주국 프랑스와 얽힌 인천항의 역사 기행

 

인천 AG 펜싱, 대한민국 독주 체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펜싱 종목에서 대한민국 활약상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종목별 펜싱 경기가 진행 된 현재 8개의 금메달 중 6개를 대한민국이 독식했으며 나머지 2개 종목에선 은메달로 확실한 승기로 대한민국 펜싱의 저력을 제대로 뽐냈습니다. 대한민국 펜싱의 발전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한 단계 도약하는 장으로 삼고 달려왔으며 아시아 NO.1 펜싱 강국으로 독주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견된 결과였으며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의 대한민국 펜싱의 강인함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펜싱의 종주국은 프랑스



아시아 NO.1 수려한 탑 랭커들이 포진해 있는 대한민국 펜싱은 펜싱이 가장 먼저 시작된 프랑스에서 도입 해 왔으며 펜싱 강국인 동유럽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기술을 익혀와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펜싱강국으로 자리매김 하게 됐습니다.

초기 역사에서 펜싱은 전투적 검법으로부터 스포츠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는데 마스크를 사용하고 검 끝에 솜방망이를 달아 안전성을 도모함으로써 완전히 스포츠화 하였으며 현대의 펜싱경기가 탄생하였습니다. 검을 가지고 상대하는 두 경기자가 찌르기또는 베기등의 동작으로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 이며 세부 종목으로는 플러뢰’, ‘에페’, ‘사브르로 구성 돼 있으며 각기 종목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릅니다.



프랑스와 얽힌 역사기행 [병인양요]

1866년 초,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신부와 조선 내 천주교신자 수 천명을 학살하였습니다. 박해 때 프랑스선교사 12명 중 9명이 잡혀 처형됐으며 3명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3명 중, 리델(Ridel)이 중국으로 탈출해 주중 프랑스 함대사령관 로즈(Roze. P.G)에게 박해 소식을 알리면서 보복 원정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로즈가 대함대를 이끌고 내침, 한불간의 군사적 충돌이 야기됐습니다.


(출처-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네이버지식백과)


로즈의 1차 원정은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인천 앞바다를 거쳐 서울까지의 수로를 탐사하기 위한 예비적 탐사 원정이었습니다. 세밀한 지세 정찰과 수로 탐사 끝에 지도 3장을 만들어 돌아갔습니다. 이후, 로즈는 한강 봉쇄를 선언하고, 2차 조선원정길에 올랐습니다. 안내인 Ridel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도 3명을 대동하였습니다. 원정길 직후, 로즈는 강화부를 점령하고 조선이 선교사 9명을 죽였으니, 조선인 9,000명을 죽이겠다.”는 강경한 보복의지를 보였습니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정부는 강화도 수복 계획을 구상하였고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총포 화력으로 무장해 조선군을 압도했습니다. 이때, 양헌수는 화력면에서 열세인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제압하려면 기병작전이여야만 한다는 판단 하, 강화도 수복 작전을 수립하고 비밀리에 프랑스군의 내습을 기다렸습니다. 조선군이 보복 작전에 착수 했다는 보고를 받은 로즈는 경무장한 채 조선군 공략에 나섰고, 조선군과의 군사적 충돌이 있었으나 조선군이 승기를 잡으며 프랑스군은 전의를 상실합니다.


(출처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네이버지식백과)


그 결과, 극도의 피로로 한번의 패배 이후, 재공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 함대를 철수 합니다. 원정을 끝내고 청나라로 돌아간 로즈는 선교사 학살에 대한 보복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모든 외교관들은 그의 원정을 실패로 간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 개항을 위한 협상조차 벌이지 못했다는 점, 패전 직후 함대를 철수 했다는 점, 학살에 대한 응징 보복인데 보복은커녕 오히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을 강화시켰다는 점이었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네이버지식백과)


펜싱으로 시작하여 병인양요까지. 다소 쌩뚱맞아 보일 수 있지만,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역사공부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으세룡? 익히 들어 알고있지만 막상 헷갈리는 병인양요프랑스와 한국 그 사이에 인천항이 있었다는 것 잊지 마세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