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룡이에요. 여러분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말을 아시나룡? 동족상잔은 동족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비극적인 말이에요.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서는 동족상잔의 슬픈 역사가 있어요. 바로 6.25 전쟁! 이 슬픈 역사는 그 시대의 전쟁으로만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도 이산가족의 아픔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안타깝고도 슬픈 6.25 전쟁의 발생 배경과 결과에 대해 해룡이가 설명해 드릴게요.

전개

1950625일 새벽, 38선상 지역에 북한군의 기습적 남침이 시작되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북한군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628,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습니다.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은 UN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하여 ‘6.26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UN군 참전을 결정하고, 915일에는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여 928, 3개월 만에 수도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승기를 잡은 국군은 38선을 돌파하여 UN군과 함께 북진 작전을 시행하였으나, 미국의 북한 점령을 경계한 마오쩌둥이 북한에 중공군을 참전시키면서 UN군은 다시 38선 남쪽으로 후퇴를 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38선을 사이에 둔 장기전이 지속되면서 중공군과 UN군은 서로의 전력 손실과 장기전 우려로 인해 휴전회담을 계획하게 됩니다.

휴전 협정

휴전 협상은 1951710일에 처음 열린 이후로도 UN군과 공산군의 전투가 반복되며 약 2년간 이어졌는데요. 1953727UN군 대표 클라크, 북한 대표 김일성, 중공군 대표 팽덕회가 정전협정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약 3, 1129일 동안 지속된 6.25 전쟁은 휴전되었답니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종결하는 의미인 평화조약, 강화조약이 아니라 단순히 전투행위를 중지시키는 협정으로 국제법상 한국전쟁은 일시 중단되어있는 상태입니다.

결과

이렇게 약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남겼는데요. 민간인 포함 약 450만 명 정도가 사망하였으며 남한의 피해는 약 200만 명에 달하고, 공산 측 피해는 약 25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며 한국군 62만여 명과 유엔군 15만여 명 등 77만여 명이 전사, 부상, 실종되었고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은 1,000만여 명이 넘었습니다. 재산 피해도 추산이 어려울 정도로 컸다고 하는데요.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대한민국 제조업 42%가 파괴되었으며 도로, 철도, 교량, 항만, 학교 등은 물론 개인 가옥도 대부분 파괴되는 많은 피해를 남겼답니다.


오늘은 6.25전쟁에 대해 해룡이와 함께 알아보았어요! 공휴일은 아니지만 제696.25 전쟁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로 해룡이와 약속해룡! 한국전쟁의 아픔을 떠올리며 다가오는 625일에는 희생한 수많은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룡? 해룡이는 다음 시간에 더욱 유익한 주제로 찾아올게룡! 안룡 안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