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같았던 고흐의 삶과 그림을 조명하다
“빈센트 반 고흐”
김영숙 지음ㅣ유화컴퍼니 펴냄
청춘 시절 “빈센트 반 고흐”를 매우 감동 깊게 읽었었다. 고흐는 자신의 삶과 예술을 토로한 909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주로 후견인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썼던 것들이다. 현재 시중에 출판돼있는 “빈센트 반 고흐”는 대부분 저자들이 이 편지들을 기반으로 쓴 산문 형식이고, 편지들만을 모아 엮은 “빈센트 반 고흐 편지” 모음집 또한 별도로 출판돼있다. 어느 책을 읽든 인간 빈센트 반 고흐의 고뇌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크게 될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한 자세를 성찰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해마다 4, 5월은 꽃의 계절이다. 엊그제는 길을 걷는데 흔한 민들레 옆에 필자가 아는 개망초가 꽃을 피웠다. 이상했다. 개망초는 더운 여름에 피는 꽃이 아니든가. 그럼에도 필자가 보기에 필시 개망초라 ‘철모르는 개망초가 여름인 줄 알고 벌써 꽃을 피웠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 옆 바닥에는 파란색의 작은 꽃들이 군락을 지어 피었는데 꽃 이름을 모르니 답답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야생화’나 ‘예쁜 꽃’이라 호칭하면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도바람꽃, 변산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선괭이눈, 설중화, 산괴불주머니, 중의무릇, 원추리, 얼레지’ 등등 이름을 알면서 감상하는 꽃은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즈음 우리 산야의 야생화를 다룬 “천마산에 꽃이 있다”(조영학 지음. 글항아리 펴냄)가 때마침 사무실에 배달이 돼왔다. 그 책을 보니 필자가 개망초로 여겼던 꽃이 실은 봄망초였다. 바닥의 파란 꽃은 큰개불알꽃이었다. 꽃 이름을 알고 나니 일단 답답증 하나가 뻥 뚫리는 기분은 물론 다시 보는 꽃이 이전과 다르게 더욱 친근했다. 시인 김춘수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가 생생하게 살아났고, ‘베려 하면 잡초 아닌 것이 없지만 품으려 하면 꽃 아닌 것이 없다’는 어느 농부의 명언이 꿀물처럼 달았다. 이처럼 꽃도 음악도 그림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른 것’이다.
1890년 7월 27일, 프랑스의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울린 한 방의 권총 소리는 불꽃처럼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가 신의 품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의사 갓셰의 발언대로 ‘인류 복지에 커다란 손실을 입힌 날’이 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성화, 그림이 된 성서”, “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저자인 그림 전문가 김영숙의 신간 ‘빈센트 반 고흐’는 갤러리 북이다. ‘해바라기, 귀를 자른 자화상, 감자 먹는 사람들’ 등 고흐가 그린 그림 하나에 김영숙 저자의 해설 한 편이 같이 편집된 형식이다.
일단 외양부터 책이 매우 고급스럽다. 원화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출판사와 저자가 심혈을 기울인 까닭이다. 책의 출판 목적은 대략 3가지 질문으로 읽힌다. 첫째, 고흐는 어떤 화가였는가? 둘째, 그가 그린 그림은 어떤 의미와 스토리를 가졌는가? 셋째, 고흐 그림들을 원본 느낌 그대로 소장해보지 않겠는가?
‘귀를 자른 자화상’은 함께 살던 고갱과 다투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배경이다. 고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귀를 자른 사건의 ‘팩트’는 정확하지 않다. 흔히 알려졌듯이 고흐가 스스로 면도칼로 잘랐다는 주장은 고갱이 자신의 입장에서 회고록에 밝힌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고갱이 (실수로) 그랬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자화상에 다친 귀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거울에 비친 고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영숙은 ‘잔뜩 야윈 얼굴에 외투 색을 닮은 푸른 눈동자가 아프다고, 귀가 아니라 마음이, 그리고 세상이 아프다는 소리를 대신한다. 한 번만 깜빡이면 푸른 슬픔이 눈물로 고였다가 야윈 뺨을 타고 흘러내릴 듯하다’고 해설을 이어나간다. 고흐와 그의 그림을 ‘사랑하고, 알고, 보게 될’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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