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스토리셀링이다

가오펑 지음ㅣ전왕록 옮김ㅣ모노폴리언 펴냄.


<이야기 자본의 힘>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 곧 시작된다. 이미 대권을 향해 달려왔던 잠룡들에 더해 깊은 물속에 웅크리고 있던 이무기들이 저마다 여의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질 것인 바 그들 중 한 사람이 결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필자가 장담컨대 그가 대통령이 된 데는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는 ‘스토리’가 한몫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국내외 누구를 보더라도 유력한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사람치고 그럴만한 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본의 힘>은 바로 그 스토리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하수는 광고로 설득하지만, 고수는 이야기로 매혹한다’는 사실에 천착해 대표적인 글로벌 스토리의 생성, 전파의 비법과 유무형 효과를 분석했다. 원제 <The Power of storyselling>에서 보듯이 스토리가 단순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텔링(telling)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상품의 구매욕을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동기가 되는 셀링(selling) 포인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한 책이다. 코카콜라, 루이비통, 리바이스, 바비인형 등 세계적인 기업이나 상품과 거기에 얽힌 스토리들이 분석 대상이다. 이 스토리들은 주로 하버드 MBA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인용되는 글로벌 스토리들이다.


 흔히 스토리의 파워를 이야기할 때 약방의 감초가 ‘유럽 3대 허무 여행’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 공주 조각상,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엔 연중무휴 관광객이 밀려들지만 막상 가보면 별 볼 일 없다는 뜻이다. 사실 안데르센의 동화 때문에 유명해진 인어 공주 조각상은 항구 인근에 세워진 조그만 청동상에 불과하다. 그마저 이런저런 기회로 매스미디어나 책을 통해 이미 수도 없이 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그곳까지 기를 쓰고 가는 이유는 <미운 오리 새끼>, <백설공주>,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등의 주옥같은 동화에 가슴 설레었던 그들의 어린 시절 추억과 동심이 그들의 여로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데르센과 함께 어우러졌던 그들만의 스토리 때문에 그곳엘 가는 것이다. 똑같은 복제품 인어 공주 조각상을 코펜하겐 그 자리가 아닌 중국의 황하나 서울의 한강에 백 개를 세운다 한들 관광객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 스토리가 함께 하지 않아서다.


당연히 그런 스토리가 우리나라라고 없는 건 아니다. 강원도 춘천 소양강에는 ‘소양강 처녀’ 동상이 있다. 오래전 유행가 ‘소양강 처녀’의 스토리를 간직한 동상이다. 그럼에도 인어 공주 조각상만큼 유명하지도, 관광객이 몰려들지도 않는다. 그 노래가 말 그대로 아주 오래전의 수많은 유행가 중 하나에 불과할뿐더러 안데르센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동화들이 주는 감동을 이 노래로부터 가진 이가 일부에 국한되는 탓에 살아있는 스토리로 부활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국내의 성공한 스트리 셀링의 대표주자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매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가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출시된 지 33년이 지난 이 과자는 여전히 연 매출 천억 원을 넘기고 있고, 그 매출의 60%가 9월부터 11월 주변에 발생한다고 한다. 이 날을 본떠 ‘삼겹살 데이’, ‘자장면 데이’, ‘블랙데이’ 등이 (의도적으로) 생겨났지만 셀링 효과는 아직 뻬뻬로와 비교할 수 없이 미미하다. 여기에 지자체들도 지역 특산물이나 관광지, 축제 등의 스토리 개발에 열을 올린 결과 버스커 버스커의 히트곡이 엉킨 ‘여수 밤바다’가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야기 자본의 힘>은 4부로 구성돼있다. 1부 ‘왜 이야기 자본인가?’, 2부 ‘훌륭한 이야기 자본의 특성들’, 3부 ‘이야기 자본과 전파’, 4부 ‘좋은 이야기의 무한한 힘’이다. 더 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매력 있는 제목들이다. 좋은 스토리텔링의 4가지 조건은 ‘관심을 붙잡고, 흥미를 유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구매)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끌리는 이야기가 된다. 끌리는 이야기들은 ‘진솔함, 선의의 거짓말, 공감, 미완성의 아름다움, 상대의 이야기, 우회’라는 공통적 비밀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수입된 생수 에비앙과 수십 종에 이르는 국산 생수들과의 품질적 차이를 육안으로 식별해 낼 소비자는 없다. 양쪽 물의 화학적 성분의 차이를 소비자가 실험실에서 직접 확인하기도, 생산 현장을 눈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에비앙은 프리미엄 생수로서 판매가와 신뢰도가 월등하다. 에비앙이 가진 남다른 스토리 때문이다. ‘뒤로는 알프스를 등지고, 앞으로는 레만 호수를 둔 작은 마을 에비앙에서 나는 물은 고산에서 녹은 눈과 산지의 빗물이 산맥과 오지를 흐르며 15년 동안 천연 여과를 거치는 광천수다. 그래서 다량의 순수한 미네랄과 칼슘, 마그네슘, 탄산수소염 등이 풍부해 인체에 이롭다’는 ‘그럴싸한’ 스토리 때문이다. (사실 마셔보면 물맛이야 모든 생수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던가.)


 품질의 상향 평준화로 기능에서 별반 차이가 없이 모두 훌륭한 현대의 상품들이야말로 스토리가 성패를 좌우한다. 비단 대통령이나 상품뿐만 아니라 지금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대학 수시입학의 당락을 좌우하는 자기소개서 역시 나만의 스토리가 관건이다. 스토리 셀링은 이제 기업을 넘어 개인의 삶의 질까지 좌우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