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으로 읽은 인천항 풍경 일곱 번째 시간이 찾아왔어룡. 1930년대 후반 정지용시인에게 사사하면서 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김상민 시인의 시를 읽어볼텐데요. 김상민 시인은 일제말 협동당 별동대에서 항일투쟁을 하다가 1944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신진시인 활동하다 월북 했습니다. 


김상민의 시 '안해' 읽어볼까요?



XXX의 陳頭(진두)에서

남편은 개끌리듯 잡혀 하고

안해 마저

비누 공장에서 쫓겨나

외풍 기어드는 셋방 구석에

거머리 새끼 같은 자식들

떨기만 하고 울지두 못한다.


담배 장사를 할래두

미천이 들었다

어떻게 사나

남편의 동무집 찾어 보면

마찬가지 사정이구

하루해 싸다니다가

빈손으로 드러온 밤

그래두 안해는

죽기가 싫었다.


삼년 言渡(언도)받은

남편을 위해서 라도

악착 같이 살구 싶었다

요눔의 세상을!

요눔의 세상을!

눈이 펄펄 날리는 날

아침 굶은 안해는

두주먹 야무지게 들구

三相決定記念(삼상결정기념)

市民大會(시민대회)에 나갔다.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돌봐야 하는 노동여성인 아내도 비누공장에서 쫓겨나 생계가 막막하고, 극한 상황에 처한 설움이 너무나 커서 울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당시 민중들의 일반적인 삶이었는데요. 그래도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삶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눈이 쏟아지는 날,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내는 삼상결정기념 시민대회에 나가고, 해방정국은 혼란의 연속이었고, 신탁통치에 대한 정치적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러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의 아픔이랍니다. 



1918년 완공된 인천항갑문 = 사진제공 : 인천항만공사



이데올로기에 의한 좌/우 대립은 결국 분단으로 이어지고 결국 6.25라는 비극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직도 분단국가라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김상민의 시 '안해'에서는 비누공장이라는 단어가 나온답니다. 체제를 갖춘 비누회사는 1912년 10월 자본금 30만 원으로 송월동에 설립된 애경사가 최초랍니다. 애경 비누의 판로는 조선 전국 각지였는데요. 가까운 경인지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대전, 대구, 목포, 군산 등 각지방으로 판매되었답니다. 김상민 시인의 시 속에 등장하는 비누공장이 송월동 애경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