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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존슨 지음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미국의 출판 환경이 부럽기만 하다. 픽션(문학)에 비해 논픽션(비문학)을 지나치게 홀대하는 우리의 못된 전통이 일단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의 논픽션 작가들은 책만 내는 것으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런 책을 낼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다는 것, 대중적이 아닌 전문서라도 일정한 판매를 담보해주는 도서관 인프라가 있다는 것 등이 부럽다.


논픽션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책에서 말하는 ‘여기’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의 인류문명을 말한다. 현재의 발전이 있기까지 킹핀의 위치에 있는 6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인류발전사를 다룬 것이다. ‘유리, 냉기(COLD), 소리, 청결, 시간, 빛’이 그것들이다.


<유리>는 참으로 위대했다. 19세기 조선에 근대 문물이 들어오면서 공장에서 생산된 가정용 유리도 들어왔다. 어쩌다 깨진 유리의 조각은 창호지 바른 안방 문고리 주위의 조그만 장식품으로 재활용됐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장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불시에 찾아와 마당에서 흠, 흠 헛기침 소리를 내면 유리가 있기 전에는 방문을 열어봐야 누군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했다. 그러나 유리가 붙은 뒤로 사정이 달라졌다. 유리를 통해 누군지 미리 알아보고 방문을 열지, 없는 척 숨을 지 미리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뜻하지 않게 소통 문화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아주 단순한 예지만 이렇게 ‘유리’라는 물질이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은 매우 막중하다. 이산화규소가 섭씨 500도의 어떤 열기에 녹아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막의 유리는 보석 류의 장식품 개념으로 채취됐었다. 현대적 개념의 유리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천 년이 넘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붙잡혀 온 터키의 유리기술자들이 무라노 섬으로 집단 이주를 하면서였다. (무라노 섬으로 이들을 가둔 것은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던 베네치아가 섭씨 500도로 달아오르는 유리 용광로 때문에 수시로 불바다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의 확산은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속속 이끌어냈다. ‘렌즈’가 스타트였다. ‘돋보기’와 ‘안경’이 생기자 책이 더 필요해졌다. 이는 인쇄술의 발전을 불러 금속활자로 이어졌다. 책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문명(지식)의 전파와 발전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우주기술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졌다. 비커와 유리막대가 없었다면 실험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은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현대에 들어 유리섬유(광섬유)는 A380 항공기의 동체는 물론 인터넷 통신망을 가능하게 했다. 그 모든 인터넷이 유리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현대문명의 총아 스마트폰 역시 유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유리는 과학기술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거울’은 화가들에게 원근법을 가르쳤고,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고찰(?)하면서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을 관찰하려는 욕망이 돋았다. 그 욕망이 바로 르네상스를 불렀다.


<냉기>는 냉동냉장기술의 상징어다. 이른바 ‘얼음혁명’을 말한다. 1834년 초여름 범선 마다가스카르 호가 리우데자네이루에 입항했다. 배에는 뉴잉글랜드의 호수에서 마음껏 깨낸 얼음이었다. 보스턴의 사업가 프레데릭 튜터는 이 상상초월 얼음무역으로 ‘얼음왕’이란 칭호와 함께 거부가 되었다. 1860년 뉴욕에서는 3가구 중 2가구가 날마다 얼음을 배달 받았다. 


얼음의 상용은 인공제빙기를 거쳐 냉장고, 냉동고, 냉동탑차로 이어졌다. 육류생산의 도시 시카고는 사실상 얼음 위에 지어진 도시라 해도 무방하다. 얼음은 인류의 ‘먹는 문화’를 완벽하게 바꾸어 놓았다. 뿐만 아니다. ‘에어컨’은 열대의 습기와 사막의 열기에 쌓인 애리조나의 인구를 급증시켰다. 냉동수정란으로 수백만 명의 갓난아기들이 탄생했고, 그들이 성장해서는 급속 냉동을 거친 ‘즉석 백반과 컵라면’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소리>는 1850년 파리의 출판업자 스콧이 녹음기술을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1857년 소리를 녹음하는 ‘포느토그라프’가 그에 의해 발명됐고, 20년 후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다. 전화, 무전기, 라디오, TV, 영화, 마이크-앰프-스피커, 스마트폰이 모두 소리의 발전사이자 라이프스타일의 대전환을 불렀다. 초음파탐지기는 무기와 신생아의 운명까지 갈라놓았다.


<청결>은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이다. 도시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상하수도 시스템과 육체적 배설물의 처리는 ‘시장과 대통령’의 운명까지 좌우했다. 불결은 세균학의 발전을, 야외 인공 수영장은 비키니 수영복을 탄생시키며 패션의 발전을 불렀다.


<시간>은 시계 산업의 상징이다. 근세 이전에는 분초를 다투면서까지 살 필요가 없었다. 시간에 맞춰 타야 할 버스도, 기차도 없었고 일분일초의 타이밍이 중요한 미사일이나 우주선도 없었다. 탄소연대측정법은 시간의 과거이고, 우주탐사선은 시간의 미래이다. 출근부 펀치는 출퇴근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을 매우 열악(?)하게 바꾸어 놓았다.


<빛>은 인공조명을 말한다.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양초를 벗어난 것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면서였다. 밤이 낮처럼 밝아지자 인류의 라이프스타일도 그만큼 놀라게 변했다. 극장과 식당이 들어찼고 밤에도 공장이 돌아갔다. 섬광이 터지는 사진기는 신문의 혁명을 부르며 사회변혁을 주도했다. 네온싸인이 화려한 소비시대를, 레이저 광선으로 소설 속 상상이 현실이 됐다. 바코드는 물류의 혁신을 가져왔고, 지금은 ‘인공 태양’이 빛을 뿜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인류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북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