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해룡이에룡~!!

여러분은 한국전쟁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싸운 전쟁인데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 중 하나인 ‘한국전쟁’에 대해 공부해볼게룡!


한국전쟁의 배경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도 잠시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세워지면서

한반도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미국이 친일파를 내세워 다스리는 식민지라며 적대시했고, 

남한 역시 ‘북진 통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을 적대시하는 등

이념적 대립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북한의 전쟁준비



1949년 3월, 김일성과 박헌영 등 북한의 핵심 인물들은 중국과 소련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스탈린을 만나서 남한을 공격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어냅니다.


소련은 곧바로 북한의 남한 침공을 돕기 위해 움직이는데요.

1948년 12월, 소련은 북한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미국에게도 남한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1949년 6월, 미군도 남한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한국전쟁의 경과 및 결과


① 북한군의 기습남침 (1950.6.25.)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38도선 전 지역에서 총공격을 시작합니다.

마침 이날은 일요일이라 많은 군인이 외박 및 휴가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 틈을 타고 북한군은 서울을 향해 밀고 내려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게 됩니다.



② 유엔군의 참전 (1950.7.17.)

마음이 다급해진 이승만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미국은 유엔과 함께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낙동강까지 밀리게 됩니다.



하지만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전세가 역전되어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게 됩니다.



기세를 타고 북진을 시작한 연합군은 10월 26일 압록강까지 밀어붙이며 전쟁의 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③ 중공군의 개입 (1950.10.25.)

북진통일을 앞두고 북한의 도움 요청을 받은 중국이

18만 명의 중공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전쟁에 참전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 압록강까지 밀어붙이던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습니다.

1951년 1월, 서울이 다시 북한군의 손에 들어갔으나, 

치열한 전투 속에 3월 5일에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④ 휴전의 성립 (1953.7.27.)

1951년 3월, 38도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며,

전쟁 1년 만에 전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남북한은 물론 미군이나 중공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에 휴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결국 38도선을 경계로 휴전협정을 맺음으로써 전쟁은 중단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결과

전쟁은 3년 1개월간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하며, 수만 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수천 명의 사람은 북쪽에서 헤어진 자신의 가족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이 돼버렸습니다.

또한, 공장 시설 역시 대부분 파괴되어 산업 피해 시설이 막대하였고,

학교와 개인의 집도 대부분 파괴되는 등 국토의 80%가 파괴되어 전 국토가 황폐해졌습니다.



오늘은 해룡이와 한국전쟁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처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해요.

곧 있으면 한국전쟁 기념일인데, 이날만큼은 모두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 시간에는 더욱 유익한 정보로 찾아올게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