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 인천은 외국과의 물자운송의 국제항구일 뿐 아니라, 인천항에서 강화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산에 이르는 국내항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인천에는 인천항에 본점을 둔 해운회사와 일본해운 회사 지점이 설치되었습니다. 인천항에 본점을 둔 해운회사로는 호리리키타로가 세운 호리 기선회사가 있고, 지점으로는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과 오사카상선 인천지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회사소유기선으로 인천항의 물류운송을 독점하였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에는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연안운항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전운국에 이운사를 세우기도 했으나, 해운회사로 발전되지 못하고 세창양행과 일본우선회사에게 선박운항을 위탁하였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물류수송은 물론 우리나라 연안의 물류수송을 독점했던 여러 해운회사들은 이후 일본우선회사가 설립되면서 지점을 철수하였습니다. 일본우선회사의 본점은 도쿄에 있었고 인천 지점은 1883년 4월에 설치되었습니다. 1898년 당시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에는 지배인 1명, 점원 3명 등 총 4명의 직원이 근무했습니다.



(사진 설명. 일본우선주식회사 전경. 현재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아카이브(자료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아카이브(자료실)로 활용되고 있는데, 중구 해안동 1가 9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의 건축연도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인천사정'과 '인천중구의 옛 풍물'에는 1886년에 신축한 것으로 기록하였으며, '인천부사'에는 1886년 8월에 일본거류지에 벽돌 건물의 사무소, 사택 및 창고를 신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벽체가 타일로 마감되어 있으나, 과거의 사진자료와 '인천사정'의 기록으로 볼 때 건립 당초에는 붉은벽돌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옥 근처에 사택, 창고를 같이 세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설명, 일본우선주식회사 주변 일본인 주택 거리)



이 건물은 당시의 업무용 건축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며, 건축 재료를 일본에서 반입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정면을 좌우대칭으로 처리하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설치한 주 출입구 상부를 페디먼트로 처리한 의양풍 건축물입니다.

이 일대의 건축물이 주로 은행이나 관공서 건물인데 비해 격식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던 회사의 업무용 건물이라는데 의미가 있으며, 근대 초 사무소 건축의 양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의 이력을 살펴보면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미쓰비시기선 인천지점, 호리기선회사, 무인창고(1933년)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동화실업주식회사, 천신항업, 대흥공사 등 항만관련 회사의 업무용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아카이브(자료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