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공동체를 위하여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박제영 지음ㅣ늘봄 펴냄
연예인이 관련된 나이트클럽 사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수치를 견디지 못한 여배우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사건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떤 여성은 사소한 땅콩 한 알 때문에 승무원들을 모욕하며 비행기를 되돌렸다가 호되게 경을 치렀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돈이나 권력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공동체의 일원, 존엄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기보다는 마음대로 다루고 농락해도 되는 ‘물건이나 개, 돼지’ 정도로 보는 것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사람보다 물질과 권세를 더 귀하게 여기는, 돈이나 권력이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여기도록 우리 사회가 일그러진 탓이다. 이 일그러짐의 배경에는 ‘인문(人文)의 부재’가 끼어있다. 시인 박제영이 ‘사는 게 참 꽃 같기를’ 호소하는 이유다.
“며느리도 봤응께 욕 좀 그만해야 / 정히 거시기해불면 거시기 대신에 꽃을 써야 / 그까짓 거 뭐 어렵다고, 그랴그랴 / 아침 묵다 말고 마누라랑 약속을 했잖여 // 이런 꽃 같은! … … // 봐야 /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때마침 거리를 걷는데 한 건물의 현수막에 ‘기분 꽃 같네’라 씌어 있었다. ‘꽃길만 걷자”는 말보다 훨씬 꽃 같은 말로 다가왔다.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 꽃을 안 사면 무엇을 산단 말인가"란 시구가 입가를 맴돌았다. (이진명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꽃 같은 기분에 취해 꽃으로 이어지는 생각은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교육지론과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고은. 그 꽃)을 거쳐 기어이 김춘수의 ‘꽃’에 이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으로 시를 말하자니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뺄 수가 없다.
“… 오월 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 떠러져 누은 꼿닢마저 시드러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 뻐쳐 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 일본 속담에 미인을 일러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란 말이 있다. 모란은 한자로 목단(牧丹)이다. ‘화투’ 놀이를 아는 사람이면 ‘6월 목단’을 모를 리 없다. 여기서 잠깐, 박목월의 시 ‘사월의 노래’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노래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에 등장하는 목련은 모란과 전혀 다른 꽃임을 기억하자. 모란과 작약은 자매지간이나 모란은 나무, 작약은 풀이다. 매혹적인 자태로 화중지왕(花中之王),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 불렸다. 그럼 영랑만 모란을 노래했을까?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이 벌써 절세미인 양귀비를 두고 ‘명화경국양상환(名花傾國兩相歡), 모란과 경국지색이 서로 반기니’라며 ‘청평조사(淸平調飼)’를 읊었다. 시인 박제영은 덧붙인다.
“부귀도 영화도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꽃이 아무리 예쁜들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요. 그래도 꽃처럼 붉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의 한 시절을 보내고, 그 추억으로 사는 것이 인생 아닐런지요.”
이렇게 시인 박제영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사는 게 참 꽃 같아야’는 꽃, 문학, 노래, 영화 등의 이야기가 ‘잡학에 강한 시인의 구라’로 버무려졌다. 봄의 꽃 ‘목련, 냉이, 벚꽃, 찔레꽃, 진달래, 박대기’ 등 18개, ‘수국, 봉선화, 능소화, 며느리밥풀꽃, 수련’ 등 여름꽃 20개, ‘구절초, 국화, 꽃무릇, 억새, 무화과, 사루비아, 코스모스’ 등 가을 꽃 7개, ‘동백, 매화, 수선화, 에델바이스, 대나무’ 등 겨울꽃 6개가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가장 먼저 피는 꽃은 ‘모란과 헷갈리지 말자’ 했던 봄의 전령 목련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 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을 부르는 가수 양희은의 사연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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