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달이 죽은 공명을 이겼다.


"결국 이기는 사마의"


친타오 지음ㅣ박소정 옮김 ㅣ 더봄 펴냄



“인내하며 때를 기다려라. 무릇 사람은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한다.” 국민 필독 소설 “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사마의 중달이 남긴 유언이다. 그동안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는 말을 귀 닳게 들어서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로 시작되는 소설의 선입관 때문에 ‘유비 진영은 좋은 사람들, 조조 진영은 나쁜 사람들’로 인식했다. 결국 관우, 장비, 유비가 순서대로 죽고 조조 일가가 위나라를 세워 천하를 손에 쥐었음에도 승리는 ‘착한 유비’가 했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삼국지’’의 특징이다.


과연 ‘‘삼국지’’의 승자는 유비일까? ‘’삼국지’’는 한족의 명나라가 들어선 시점에 쓰인 책이라 저자 나관중이 한나라 황실 후예 유비에게 매우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유비는 매우 인덕이 높은 지도자로, 조조는 상대적으로 비수와 음모에 능한 지도자로 인식된다. 그래서 유비가 삼국통일을 못 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조조는 비열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심지어 ‘조조가 한나라 황실 중심의 중앙집권체제에 저항했다’고 평가하는 독자도 있다. 그의 참모였던 순욱도 조조의 능력 중심 용인술과 지도자로서 솔선수범을 높이 평가했다. 유비의 책사 공명과 조조의 책사 중달에 대한 평가 또한 동일하다.


라이벌 공명에게는 주로 패했지만, 이는 ‘공명이 있어야 오히려 나의 가치가 빛난다.’는 중달의 고단수 ‘져주기’ 술책이었을 수도 있다. 순욱은 자신의 실력을 믿고 충언을 마다하지 않다가 조조가 보낸 빈 찬합을 받고 자결했다. 조조의 속마음을 너무 꿰뚫는 데다 은근히 후계 구도에 관여하다 제거당했던 ‘계륵(鷄肋, 조조가 한중 땅을 먹기도 버리기도 아까운 닭갈비에 비유했던 고사)’의 주인공 양수와 달리 중달은 조조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다.


조조, 조비, 조예를 이은 조방 황제에 이르러 라이벌 조상이 실권을 장악하자 병을 핑계로 낙향했을 당시 중달의 나이 칠십이었다. 중달이 사라지자 마음껏 패권을 휘두르던 조상은 혹시나 싶어 심복 이승을 인사차 보내 중달의 동정을 염탐하게 했다. 이미 조상의 의도를 간파했던 중달은 이승 앞에서 손을 떨어 약사발을 흘리고 귀머거리 행세를 했다. ‘병이 깊이 들었다. 치매도 있다.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심복의 보고를 받은 조상은 황제 조방을 모시고 황궁을 벗어나 고평릉에 유유히(?) 제사를 지내러 갔다. 죽은 듯 있던 중달은 이때다 싶어 은밀히 관리하던 군사들을 소집해 일거에 황궁과 위나라를 실질적으로 접수했고, 그의 손자 사마염에 이르러 결국 위나라를 없애고 진(晉)나라를 세우는 초석을 다졌다.


이렇듯 고희(古稀, 70세)의 늙은 중달은 결정적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서두르지 않았다. 고희는 시성 두보의 싯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한 말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칠십 세가 넘도록 사는 이가 드물다’는 뜻이다. 의술, 약술, 먹거리의 차이로 볼 때 당시 칠십 세는 지금의 구십 세쯤으로 봐야 한다. 결론은 ‘삼국지’를 읽을 것이라면 유비, 조조, 손권, 제갈량, 조자룡, 관우, 장비, 여포, 황충, 마초, 주유, 육손 등등 영웅호걸들의 ‘지혜, 전략, 의리, 활극’도 좋지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인내와 대기만성’의 도(道)를 사마의 중달로부터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사마의 전문가 친타오의 ‘’결국 이기는 사마의’’가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한 것이 바로 이 관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사마의 중달에 대해 마오쩌뚱도 “조조보다 몇 배 뛰어난 인물”이라 했고, 당태종 이세민 역시 “웅대한 전략과 뛰어난 책략으로 항상 승리한 인물”로 평가했다고 한다. ‘조조를 철저히 속이고 제갈량을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최후의 승자가 된 사마의의 인생과 처세술’이 ‘’결국 이기는 사마의’’의 대부분 내용이다. 물론, 오로지 개인적인 권력욕에 쌓여 끝까지 권모술수에 능했을 뿐인 사마의 중달에 대해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독자들도 많다. 그런 이유로 “결국 이기는 사마의”의 집필 의도는 ‘통일 권력 쟁탈전 최후 승자는 누구냐’라는 ‘단순함’에 있다는 것을 사전에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