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알고, 꽃도 알고, 나물도 알고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


오현식 지음ㅣ농민신문사 펴냄



지난 호에 고정칼럼으로 책을 소개할 때 어김없이 다루는 책 몇 권을 거론했었다. 물론 그 책들이 필수 소개 목록의 전부는 아니다. 더할 나위 없는 나물도감인 오현식의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도 반드시 소개해야 직성이 풀리는 책이다. 다듬고, 데치고, 삶고, 갖은양념에 버무리는 나물 무치기의 수고가 라면 끓이기 마냥 간단치 않기에 제철 나물 반찬이 하나라도 밥상에 오르면 상 차린 이의 가치가 배가 된다.


겨울의 초입이면 갓 캐낸 무로 무쳐내는 무나물이 입맛을 달군다. 참기름과 고추장을 더해 밥을 쓱쓱 비벼 먹는 가지나물은 또 어떤가. 아삭아삭 씹으면 고소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시금치나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뿐이겠는가. 고들빼기, 달래, 냉이, 씀바귀, 더덕, 미나리에 수리취, 어수리까지 우리 산야(山野)에서 나고 자라는 나물은 60~70종에 이른다.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 저자 김현식은 이 중 재배 등으로 구하기 쉬운 50종을 엄선해 생태, 생김새, 효능, 요리법은 물론 각각의 식물에 얽힌 역사, 사연 등 스토리까지 더해 읽을 맛, 먹을 맛 나는 책으로 엮었다. 들나물 18종, 산나물 25종, 나무나물이 7종이다. 그중에는 민들레, 쇠비름처럼 한약재로 쓰이는 나물도 많다.

  

흔히 나물은 봄에만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냉이와 씀바귀 등은 가을에 새싹을 틔우고 한겨울에 잠시 움츠릴 뿐 얼음 녹은 물에 목을 축이고 일찍이 새싹을 밀어 올린다. 미나리는 한겨울이라야 제 몫을 한다. 이처럼 계절마다 먹을 수 있는 제철 나물이 많은데 이제는 시설농업과 저장, 유통의 발전으로 채소들의 제철이 실종돼버렸다.

  

‘암을 이긴 의사’로 유명한 홍영재 박사가 지독한 ‘가지나물 편식'을 비법으로 밝힌 신문 기사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는 그 과학적 근거로 가지의 보라색에 들어 있는 식물활성영양소 파이토케미컬을 들었다. 초입에 비벼 먹는 가지나물을 괜히 꺼낸 것이 아니었다.

  

해외교포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우리 음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김치찌개, 불고기, 라면, 자장면 정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해외교포들에게 인기있는 음식은 뜬금없는 고들빼기 김치다. 


겨우내 항아리 속에서 제대로 곰삭은 고들빼기 김치의 깊고 진한 자극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는바, 역시 고들빼기 김치는 얼음이 꽁꽁 얼고 함박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숙취 등 피로물질 해독에는 미나리가 최고라는 사실은 여러 실험으로 밝혀졌다. 한겨울 칼바람과 얼음장을 견디어 낸 ‘근성’이 그런 효능의 원인이다. 미나리는 진흙탕에서도 때 묻지 않고 자라나는 심지(心志), 응달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 가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 얼음 섞인 칼바람과 대결하는 결기(決起), 이렇게 4덕(德)의 ‘교훈’을 가르치는 스토리가 있는 나물이다.

  

기자인 저자가 직접 접사(근접촬영)한 나물의 사진들과 함께 주요 요리법, 영양분, 효능, 계절과 주산지, 재배법과 특성, ‘근성 있는 미나리’처럼 전하는 스토리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보기 좋고, 읽기 편한 나물(식물) 도감이자 요리법’이 압축됐다. 부록으로 ‘가볼 만한 산나물 축제’와 ‘나물, 씨앗, 모종 판매하는 곳’이 덧붙었다.


요즘 들어 자치구마다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허준 약초학교’를 여는 등 '화초'를 애써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 봄 눈 속에 피는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도 이름을 알고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은 아름다움의 크기가 달라서다. 동강에 가서도 동강할미꽃을 알아보면 더 의미가 깊어진다. 며느리밥풀꽃을 만나면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가 영화나 만화로 머릿 속을 채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행여나 지인들과 여름철 산기슭을 걷다 고고한 자태의 원추리 꽃을 보면서 "원추리 꽃잎과 줄기에 강한 항산화, 항암 성분이 들어있다. 그래서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의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린다"라 말을 한다면 일행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다시 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