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같은 죽음 깃털 같은 죽음


“장자화의 사기”


장자화 지음ㅣ전수정 옮김ㅣ사계절




명불허전 동양 고전으로 '삼국지'와 '사기'는 터줏대감 격이다. '삼국지'를 서너 번 읽었다며 '내 인생 한 권의 책'으로 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무수한 전략전술, 처세술, 용인술, 리더십 등의 지혜가 그 안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관중의 '삼국지'는 기본적으로 정사에 기반한 역사소설이다. 나관중의 작가적 주관에 따른 창작이므로 '교훈의 개연성'에 한계가 분명하다. 나관중이 원말명초 시대 작가였기에 몽골인들을 물리치고 새로 들어선 한족의 나라 명에 대한 자부심으로 ‘유비’에게 우호적인 반면 조조에게는 야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독자들 중에는 유비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조조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그것을 입증한다.


‘삼국지’와 달리 사마천의 '사기'는 그가 살았던 한(漢)나라 이전 3천 년의 중국 고대사를 약 15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월 동안 130편에 걸쳐 집대성한 역사책이다. '사기'가 빛나는 것은 황실의 역사를 넘어 상인, 협객, 도적, 말단관리까지 광범위하게 다뤘다는 것과 사마천의 탁월하게 예리한 '삶, 처세, 정치, 도덕'의 교훈과 통찰이 곁들여졌다는 것에 있다.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는 그의 신념에서 나왔다. 그 신념은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거세)를 당해 바닥으로 떨어진 '오체투지'의 극한성찰에서 나왔다. 오랜 고행 끝에 득도를 하는 인도 수행자들과 비슷한 이치다. ‘사기’가 2천년 넘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다.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가 가라앉고, 가벼운 짐도 너무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일 수 있고, 비방이 많이 쌓이면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왕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길 바랍니다."


'장자화의 사기' 시리즈 제 3권 '세 치 혀로 세상을 바꾸다' 중 6편 '각개격파'에서 소진의 합종(合從)론에 맞섰던 장의를 다룬 대목에 나오는 대사다. '진, 연, 초, 제, 조, 위, 한'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중국 전국시대 강대국 진나라를 나머지 나라들이 섬기며 평화체제를 유지하자는 '팍스진(Pax Jin)'의 연횡(連衡)론을 폈던 장의가 위나라 장왕을 설득하며 했던 말이다.


머나먼 전국시대 역사적 사실을 독서하기 전에 말이 너무 멋있고 익숙하다. "깃털도 쌓이면 배가 가라앉는다. 가벼운 짐도 많으면 수레 축이 부러진다"는 말은 '가랑비에 옷 젖는다' '잔 매에 골병 든다'는 우리 속담도 생각 나고, '대망(大望)'의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진다'는 유훈도 생각난다. "뭇사람의 말과 비방이 쇠도 녹이고 멀쩡한 사람을 죽인다"를 대하는 순간 인터넷 '악플'이나 '마녀사냥' '신상 털기' 등 요즈음 광기의 사회가 불현듯 스친다. 이런 것들이 사실은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묘미다.


저자 장자화는 대만의 중국문학 연구가 겸 소설가다. 특별히 '사기' 전문가다. 방대한 '사기' 원본 중에 21세기 독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할 인물들의 역사만 추려서 정리하고 해설을 붙였다. 모두 5권 시리즈인데 제 1권 '큰 그릇이 된다는 것', 제 2권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제 3권 '세 치 혀로 세상을 바꾸다'까지 번역본이 나왔다. 제 4권 '비상시국에 살아남는 법', 제 5권 '역사에 이름을 새기다'는 앞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발췌'나 '요약'을 읽는 것도 경우에 따라 매우 필요하고, 경제적인 독서법임을 여러 번 말했었다.


선거 때만 되면 약방의 감초처럼 언론에 등장하는 ‘합종연횡(合從連橫)을 비롯해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 오월동주(吳越同舟), 맹상군의 계명구도(鷄鳴狗盜), 십상시 조고의 지록위마(指鹿爲馬), 항우의 사면초가(四面楚歌), 유방과 한신의 토사구팽(兎死狗烹)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 고사성어의 출처가 사실은 ‘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