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순신'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공자의 “논어”만큼이나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인용으로 ‘성웅 이순신 장군’을 접할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는 ‘원균의 모함으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면돼 한양의 의금부로 압송돼 왕의 국문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정확히 언제,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남에게 설명할 정도가 못 됐다.
그러니까 ‘많은 경우의 우리’는 ‘신이 조선을 위해 내린 인물’로까지 평가 받는, 일본인을 포함한 세계인들까지도 그의 뛰어났던 능력을 인정하는 ‘이순신’에 대해 학교 시험 때문에 암기했던 ‘임진왜란 때 한산, 명량, 노량 대첩으로 나라를 구한 영웅’ 정도로나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때문에 고른 책이 “난중일기”(저자 이순신)다. 물론, 필자의 경우 이번이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기마다 담고 있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 없이 보통의 책들을 읽듯이 그냥 읽어나가는 ”난중일기”는 단조로운 일기의 반복이라서 도중에 싫증이 나 독서를 중단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기의 문장마다 더 풍부한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을 ‘검색’해가며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 자세로 읽다보니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 1월 1일의 ‘맑다. 새벽에 아우 우신과 조카 봉과 아들 회가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어머니 곁을 떠나서 두 해째 남쪽에서 설을 쇠자니 슬픔이 복받쳐 온다. 전라 병사의 군관 이경신이 병사의 편지와 설 선물과 장편전(긴 화살),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을 가져왔다’는 첫 일기부터 노량에서 적탄에 숨지기 전날인 1598년 11월 16일 ‘어제 복병장인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간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쫓아나갔던 일을 보고하였다… 잡은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이었다’는 마지막 일기까지 어느 한 날의 일기도 소홀히 읽혀지지 않았다.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小西行長)의 강화협상 결과가 거짓으로 들통나 철수했던 왜군이 다시 부산으로 침략한 것이 1597년 1월의 정유재란이다. 임진년과 달리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加藤淸正)에게 선봉을 빼앗긴 고니시 유키나가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거짓 정보를 흘림으로써 이순신 장군을 부산 앞바다로 유인해 격파하려 했다. 그의 간계를 알아 챈 이순신 장군은 임금 선조의 부산 출격명령을 목숨을 걸고 거부했다. 그리고 명령불복종 죄로 2월 한양으로 압송돼왔다.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이 물려받았다. 장군은 임금 한 사람보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백성을 더 높이 두고 있었던 것이다. 1597년 4월 1일, 장군은 ‘맑다. 옥문을 나왔다. 남대문 밖에 있는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렀다….윤기헌도 왔다.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니 사양하지 못하고 억지로 술을 마셨더니 취하여…땀으로 몸이 흠뻑 젖’으며 사형 대신 ‘백의종군’을 조건으로 석방됐다.
다음날인 2일 장군은 ‘저물녘에 성 안으로 들어가 정승(유성룡)과 이야기를 하다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나왔’고, 3일 ‘일찍 남으로 길을 떠’났다. 그날부터 합천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을 대신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칠천량 해전 참패 후 12척의 배로 다시 조선 수군을 복구하기까지, 13척 대 133척이 맞붙은 ‘명량 해협의 혈투’를 벌이기까지, 명나라 제독 진린과의 뒷거래(?)로 안전하게 철수하려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왜군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도록 최후의 노량해전을 준비하기까지 짧게 써 내려간 일기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숨은 안타까움, 분노, 탄식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명량에서 ‘천운’으로 사선을 넘었지만 ‘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 대변도 보지 못했다’, ‘병세가 몹시 위험해져서 배에서 머무르기가 불편하였다’, ‘가는 곳마다 마을이 텅텅 비어있었다. 바다 가운데서 잤다’. ‘코피가 터져 한 되 넘게 흘렀다’, ‘생원 최집이 보러 왔는데 군량으로 벼 40섬과 쌀 8섬을 가져왔다. 며칠간 양식으로 도움이 크겠다’, ‘북풍이 크게 불어 배에 탄 군사들이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나도 웅크리고 배 밑창 방에 앉아 있었다. 하루를 지내는 것이 한 해를 지내는 듯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에 북풍이 더 크게 불어 배가 몹시 흔들렸다. 밤새 땀으로 온몸을 적시었다’는 장군 앞에서는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난중일기”를 그렇게 완독하는데 꼬박
10일이 걸렸다. 책이 두껍다거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일기마다 문장마다 인터넷의 자료들을 검색해 같이 읽다 보니 속도가 더디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아는 범위는 훨씬 깊어졌고, 넓어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번의 “난중일기’를 읽기 이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을 완벽히 오판하고 있었다. 장군은
하루 이틀, 서너 권의 책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10일을 ‘이순신’에
묻혀있었지만 이제 겨우 장군에 대해 문턱 정도 넘었지 싶다. 그럼에도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또 ‘이순신 장군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지평이 더 넓게 열린
것으로 나는 마음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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