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목표가 아닌 결과일 뿐


<과학 하는 여자들>


김빛내리 외 지음ㅣ메디치출판사







<과학 하는 여자들>이란 책 제목부터가 왠지 산뜻하다. 살림 하는 여자나 밥 짓는 여자, 아이 키우는 여자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 탓이어서 그런가? ‘여성’ 과학자-굳이 여성이라는 구별어를 붙이는 이유는 저자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 책의 기획의도라서 그렇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위인전 탓에 ‘퀴리 부인’으로 더 익숙한 그녀는 라듐 연구로 하나도 어려운 노벨상을 두 개(물리학상, 화학상)나 받은 세기의 과학자였다.


그럼 퀴리 말고 또 떠오르는 여성 과학자는 누구일까? 안타깝지만 필자 역시 금방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여자가 과학자의 길을 걷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여성 과학자가 남성에 비해 많지 않았었다는 반증이리라. 특히 사농공상의 뿌리깊은 의식이 지배했던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교육은 불문과, 영문과, 독문과같은 유들유들한 학문아니면 의사, 약사, 선생님에 주로 코드가 맞춰졌기에 여성 과학자의 존재는 더욱 더 희귀하다.


<과학 하는 여자들>이란 책이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 나오게 될 배경이다. 1권인 이 책의 캐치프레이즈가 한국의 여성 과학자 어벤저스 5. 이공계 여자들의 꿈, 연구, 좌절, 그리고 희망을 말하다인 걸로 봐도 이제 여성들이 과학자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의도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이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에서는 다학제간 연구와 융,복합적 개발이 수시로 일어난다. 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서 여성은 융합적 상상력과 마인드, 멀티태스킹 능력으로 많은 일을 해내야 하고, 해낼 수 있다. 이것이 여성 과학자의 리더십이 재평가돼야 하는 까닭이라서 그렇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특히 여성의 멀티태스킹능력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란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가지 작업을 처리하듯 여러 일을 동시에 생각하고 처리해내는 뇌의 특징을 말한다. 결혼을 해 아내와 말싸움을 해본 남성이라면 말로는 당할 수 없는 여성의 멀티태스킹에 대해 절감할 것이다.


공저자 5인의 여성 과학자들은 가히 어벤저스 급이다. 생명과학자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수학자 최영주 포항공대 교수, 법과학자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미생물학자 이홍금 전 극지연구소장, 화학공학자 박문정 포항공대 부교수다. 그녀들의 어린 시절, 과학계 입문 계기, 과학자의 길을 걸으며 특히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유리천장, 새는 파이프라인차별에 육아 등의 어려움 극복기, 과학자로서의 성취와 자부심, 여성 과학자의 비전에 대한 자신만만하고 생생한 스토리가 이 책에 담겼는데 중년의 남성인 필자마저 과학자의 길을 걸어볼 걸!’하는 부러움이 들게 한다.


뜻밖에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어린 시절에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진짜 이들 중에 초등학교 때 반에서 꼴등 했던 사람도 있다), 집안이 유복했든 가난했든 불문하고 독서에 푹 빠졌었다는 것이다.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는 것을 어른들이 깨달아 아이들의 미래를 잘 인도할 수 있게 하는 교훈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micro RNA 권위자 김빛내리 교수는 과학자는 정말 복 받은 직업이다. 정신적 만족감도 크다. 자연에 있는 비밀의 열쇠를 찾는 것은 탐험가와 같은 기쁨과 흥분을 준다. 막연한 생각이나 가설이 실험으로 정확하게 입증될 때 얻는 만족감은 형언할 수 없이 크다. 그런 과학자가 되는 데는 천재적인 머리가 아니라 호기심과 끈질긴 노력(실패는 나의 힘!),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하다. (여학생이라고) 지레 겁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끝으로 여학생들에게는 미래 과학자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일과 일상을 꾸려가는 지혜를 줄 것이다. 한편, 남성 독자들에게는 여성 과학자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저서라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신성철 총장의 추천글에 필자는 중고등학생과 이공계 대학을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그들에게 선물하기 안성맞춤인 책이란 말을 자신 있게 덧붙인다. 물론,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필자의 딸에게도 이 책을 반드시선물할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