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에룡~~!!

가을로 향하는 길목인 입추를 맞이하여 오늘 해린이와 함께 떠나볼 곳은 서울로 향하는 길목인 강화해협을 따라 구성된 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입니다. 그럼 어서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호국돈대길로 떠나볼까룡~!!!



갑곶돈대

강화나들길 제2코스의 시작점은 바로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편에 자리한 ‘갑곶돈대’입니다. 강화도 해안에 설치된 53돈대 중 하나인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부터 원종 11년까지 38년간 몽골과 줄기차게 싸우며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는데요. 갑곶돈은 1656년 인천의 제물진에 소속되었다가 숙종 5년에 돈으로 축조되었습니다. 특히 갑곶돈대는 병인양요를 맞아 프랑스군 600명과 격렬한 전쟁을 치른 곳이기도 한데요.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정족산성 전투에서 패배한 뒤 물러났다고 합니다. 지금의 갑곶돈대의 모습은 허물어져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돈대 안에는 2층으로 된 정자가 자리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특히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탱자나무는 400년이라는 시간의 두께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합니다. 근처 갑곶순교성지와 강화전쟁박물관도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용진진

인천광역시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용진진은 갑곶돈대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자리해 있는 군사적 요새로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축조되었습니다. 용진진은 가리산돈대와 강돈대, 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는데요. 더불어 돈군과 군 보급품도 함께 관리하였다고 합니다. 용진진은 조선 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등 도합 101명의 병력이 주둔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포좌 4문과 총좌 26개소의 시설물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석축 대부분이 없어지고 겨우 홍예 2문만이 남아 있던 것을 1999년에 문루를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하네요.



화도돈대

용진진에서 강화해협을 따라 쭉 남쪽으로 따라 내려가다 보면 화도돈대를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된 화도돈대는 병자호란 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입니다. 간척지 벌 가운데의 작은 동산 위에 자리한 화도돈대는 오두돈대, 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 5진 중 하나입니다. 광성보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네요.



광성보

화도돈대로부터 강화해협을 따라 4.2km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늘 강화나들길 제2코스 1탄의 마지막 장소인 광성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적 제227호인 광성보는 강화도 요새의 총사령부였던 곳인데요. 광성보 성문인 ‘안해루’를 따라 남쪽으로 난 오르막으로 걷다 보면 신미 순의총, 쌍충비각, 손돌목돈대, 광서돈대, 용두돈대를 차례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신미 순의총과 쌍충비각에서 알 수 있듯이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한 전장이었답니다.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600여 명의 조선 병사들은 신무기로 무장한 1,230여 명의 미 해군과 맞서 싸운 곳이었는데요. 이 전투를 통해 어재연 장군을 포함한 430여 명의 조선군이 전사하는 등 대패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던 조선군의 투지를 엿볼 수 있는 곳이 광성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강화나들길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을 살펴봤는데요. 아직 호국돈대길이 끝난 것은 아니니 다음 이 시간을 기대해주시고, 다음 주에 남은 호국돈대길을 마저 둘러볼게룡~!! 그럼 다음 주에 만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