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해린이에룡~!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인데요.

바로 이순신 장군께서 유언으로 남긴 말입니다.

오늘은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에 관해 공부 해볼게룡!


임진왜란의 배경



조선 선조 때,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일어난 7년간의 전쟁을

바로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혼란스러운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사건을 꼽을 수 있는데요.

특히 일본 통일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선은 국외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시아 전체를 차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조선에 수교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자신들이 명나라를 정벌할 테니 일본군이 조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일본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명과 사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조선에서는 양반 지배층 간에 권력 다툼이 일어나

일본의 침략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길을 열어달라는 요청이 거부되자

1592년 4월 13일에 약 20만 명의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침입했습니다.

시 신무기였던 조총으로 무장하고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보름 만에 한양을 점령하는 등 엄청난 기세로 전진하였습니다.

당연히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군은

밀려드는 일본군에 의해 속속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의 반격-이순신과 수군



전쟁 초기, 관군의 연이은 패배로 선조는 의주까지 몽진하는 등 전세는 불리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조선군도 그대로 당하지만은 않고, 반격하기 시작했는데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풍전등화 같은 위기 속에서

조선의 바다를 지켜내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1545년, 한양에서 태어나 무과에 합격한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 좌수사에 임명되었는데요.

임명 후 이순신 장군은 전함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등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 장군은 1592년 5월 옥포 해전 승리를 시작으로

사천, 당항포, 한산도, 부산포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바다의 수호자, 판옥선과 거북선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은 바로 '판옥선'이었습니다.

판옥선은 조선 수군의 전투함으로 노를 젓는 1층과

함포를 발사하고, 전투를 치르는 2층으로 구성되는 등 크고 높은 배로

왜군이 쉽게 배 위에 뛰어오르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을 개량해 거북선을 만들었는데요.

거북선은 돌격용 전투함으로 일본전투선 사이를 휘저으며

충돌과 함포로 적선을 공격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거북선의 구조는 판옥선과 비슷하지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북 등딱지처럼 철갑을 배 위에 얹었으며,

배 위로 오르지 못하도록 철갑 위에 날카로운 철심을 박아놓았습니다.

또한, 뱃머리에 용머리와 도깨비 머리를 달아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으며,

2개의 돛을 달아 기동력을 높이는 등 적선 사이로 깊숙이 침투하여

접근전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조선 수군의 최고 무기였습니다.


승리 그리고 마지막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기간 동안 23번의 전투를 치르면서

23번 모두 승리하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전투로는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꼽히는 '한산도대첩'과

13척의 전함으로 133척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머쥔 '명량대첩',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이 있습니다.



한산도 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함대를 한산도 앞의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적의 함대를 둘러싸 포위하는 '학익진 전술'로 큰 승리를 거둔 해전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 일본군 수군은 66척의 전투선이 파괴되는 등 거의 전멸되다시피 되었습니다.


명량대첩은 원균 장군의 칠전량 해전 패배로 남은 13척의 판옥선을 가지고 울돌목(지금의 진도)에서

일본 전투선 133척과 싸워 적선 31척을 깨뜨리는 전과를 세운 해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군의 피해가 전사 2명, 부상 2명에 불과했다는 점이고,

따라서 명량해전은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위대한 해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노량해전은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철수하는 일본군과 벌인 최후의 전투였습니다.

이 최후의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명나라 수군과 연합해 싸웠고,

전투 결과 500여 척이었던 일본 수군은 450여 척이 침몰당했고,

겨우 50여 척만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갈 만큼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순신 장군도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는데요.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싸움이 위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의 결과

7년에 걸쳐 이어진 임진왜란은 조선과 명, 일본 모두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었습니다.

조선은 전쟁이 벌어진 주요 무대였기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고, 토지가 황폐해졌으며,

많은 문화재와 서적이 훼손되거나 도둑을 맞았습니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복궁을 비롯한 한양의 궁궐들은 물론

불국사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사찰이 불에 타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역사인 임진왜란과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워 승리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정말 본받아야 할 것 같아요.

당시 이순신 장군과 우리나라의 수군이 목숨을 걸고 우리 바다를 지켰기에

지금의 해린이도 우리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다음 시간에는 더 재미있는 주제로 여러분에게 찾아올게룡~!!

다음 주에 만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