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만공사 최보기의 책보기 12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순례자>,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으로 유명한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국내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대표적인 해외 작가이다. 소설이 아닌 그의 산문집 중에 필자가 아주 오래 전에 추천 서평을 썼던 <흐르는 강물처럼>이 있다. 소설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이 산문집 역시 스테디셀러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인생의 다방면을 성찰해 얻은 노작가의 통찰이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강물처럼 잔잔히 흘러서 그럴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말고도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신작이 나왔다 하면 ‘신드롬’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국내 팬들이 반응을 보이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런 책들 중에는 ‘작품성이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저자의 유명세나 출판사의 물량 공세 마케팅에 힘입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책들도 없지않아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그런 책들이 잠깐도 아니고 아주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볼 때면 속이 무척 상한다. 그 이상의 완성도를 충분히 갖춘, 역량 있는 국내 작가들의 책들도 많은데 단지 ‘국산’이라서 나름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해외 유명 작가들만큼 화제가 되지 못한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이 그렇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 푸른 바다가 아니지 / 마음 속에 푸른 바다의 /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 청년이 아니지”라는 싯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는 싯구도 알 것이다. 전편은 정호승 시인의 시 ‘고래를 위하여’ 중 일부이고, 후편은 ‘서울의 예수’ 중 일부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 주옥 같은 시집으로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해외 작가들의 어지간한 산문집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더구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숨쉬는 ‘옆 동네 감나무 집 아저씨’가 쓴 인생에 대한 성찰이라서 훨씬 공감이 더 되는 탓에 초판이 나온 지 10 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알음알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산문집을 뒤 이은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도 역시 많이 읽히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고등학생 때 문학에 특별한 재능과 관심을 함께 가졌던 정호승 시인이 문학도가 되기 위해 국문과를 지원했을 때부터 남모를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에 태어났으니 그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1960년대 후반에는 넉넉했던 집이 드물어 자식들 공부를 대학까지 가르치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의 부모라면 특히 대학에 가는 자식이 고등고시 준비는 물론 취직 잘 되고 전망도 밝은 법대나 의대, 상대(경영, 경제) 등 인기학과로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그런 부모의 기대와 달리 비인기학과인 국문과에 진학했으니 졸업 때까지 그의 마음 한 켠은 늘 불편했을 것이다. 중앙의 유명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당선됐을 만큼 능력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문학에 전념하지 못하고 메이저 시사 월간지 기자로 일을 해야 했을 때, 또 문학에 전념하기 위해 남들이 선망하던 그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 그리고 소설을 쓰려고 몇 년을 노력하다 능력이 부족함을 알고 포기했을, 그런 때마다 어찌 고통과 고민이 크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지난했던 순간들의 어려움을 이겨내기까지 시인으로서 배우고 깨달은 수많은 교훈과 통찰들이 ‘하늘의 순리를 알게 된다는 지천명’의 나이인 오십 대 중반이 되자 독자들에게 전해도 될 만큼 완숙돼 시인의 담담하고 차분한 언어로 <내게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 응고 되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어찌 허술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시중에 황석영 소설가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박사 등을 일컬어 ‘대한민국 대표 구라’라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들의 입담이 그만큼 세다는 말인데 그건 그들이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작품 활동을 위해 방대한 책과 자료더미를 헤매고,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의 일상을 ‘숨막히도록 관찰’해야 하는 그들의 직업 탓일 것이다. <내게 힘이 되어준 한마디>가 딱 그렇다. 대 시인이 오십 대 중반이 되도록 어려울 때마다 자신에게 힘이 돼주었던 ‘한마디’들의 출처는 동서양의 문호와 부모, 형 등 가족은 기본이고 신부님과 스님, 평범한 이웃들, 그리고 시인 스스로 깨닫게 된 것들까지 다양하다.
“(그의) 한마디 말이 (독자의) 인생을 바꿀 수도, 절망으로부터 구원할 수도, (배고픈 사람에게) 갓 퍼 담은 한 그릇 쌀밥이 되어 감사의 눈물을 펑펑 쏟게 할 수도 있음”이 충분하다. 이런 책이 진정한 ‘자기계발서’이다. 내친 김에 위에서 언급한 정호승 시인의 시집들과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흐르는 강물처럼>도 시리즈로 읽는다면 더없이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북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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