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생존에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영국선급인 로이즈 레지스터사가 대학 등과 공동으로 2013년에 미래 해운산업에 대해 연구결과 ‘Global Marine Trends 2030’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해운산업이 20년 후인 2030년까지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할 산업으로 예상하였다. 특히 아시아가 향후 글로벌 해상물동량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원유 및 드라이 벌크, 그리고 컨테이너 물동량 면에서 중국은 세계해상교역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보았다.
해운산업이 2030년까지 고용, 투자 면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할 산업으로 예측되는 산업이고,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극동아시아 지역이 그 해운성장을 이끌 주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해운은 왜 이익을 내기 위해 고생해야 하며, 긴 고난의 시기가 이어지는 것일까? 그 원인을 공급과잉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다른 산업의 고정 자산과 달리, 해운의 선박은 그 소유자가 파산했다 해도 운항을 중지하지는 않는다. 대신, 낮은 중고선가로 새로운 소유자에게 매각되고, 새로운 선박 소유자는 공급과잉을 유지한 채 더 낮은 운임으로 운항을 계속하는 구조적인 공급과잉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해운산업에 유입되는 신규 투자자는 호황기 때 그 끝을 보지 않고, 선박을 발주한다. 신조선박에 의해 공급이 늘어나면 이 상태는 다시 수급 불균형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이유로 벌크선, 정기선 모두 공급과잉의 구조적인 해운불황을 겪고 있다. 유조선 부문도 금년 들어 유가하락에 의한 원유물동량 증가로 시황이 호전되었지만, 작년만 해도 선박과잉으로 마이너스 운임으로 운항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해운은 글로벌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불황이라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 해운의 어려움과 위기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해운이 똑같이 겪는 해운 전 부문에 걸친 공급과잉의 구조적인 어려움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위기를 강조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해운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이유에서 해운을 육성해왔다. 수출입으로 국가경제를 이끌어가야 하는 나라, 3면이 바다이고, 북한과의 대치 상태에서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중공업 원자재의 100%를 해상으로 수입하는 나라, 그리고 수출위주의 경제를 운영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국적벌크 해운사 및 국적 컨테이너 선사를 육성해야 하는 일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요에서 본다면 국제적인 해운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경쟁력을 갖추고 운항할 수 있는 대형 벌크선사와 컨테이너선사가 최소한 4-5개 필요하고, 이들 기업 육성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해운산업을 미래 우리경제의 번영의 기초라고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만들어 나가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팬오션은 법정관리를 통해 회사체제가 정비되었고, 폴라리스, 장금상선 등은 수익을 내는 선사이다. 나머지 선사들도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하고 다시 설립되기도 하면서 매입선가가 조정되고 금융기관의 대손처리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 대형 컨테이너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 업체의 자구책도 한계에 달하고,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선사들은 유동성도 해결하기가 바쁜 상황이어서 초대형선 발주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발주 러시를 이루고 있는 2만 TEU 급 초대형 선박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는 2~3년 후 국적 빅2 선사는 지금보다 더 큰 경쟁력 저하로 인한 점유율 하락에 직면할 수 있다.
아무리 규모의 경제만을 위한 무모한 파멸적 경쟁(destructive competition)이라 해도 회피할 수 없는 경쟁이다. 초대형선으로 가격경쟁을 하는 한 이 경쟁에서 뒤지면 중도하차를 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초대형선의 한계로 보이는 2만 4,000 teu 까지는 대형선을 건조해야 한다. 정부의 자금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에 필요한 초대형선 건조 투자재원이다.
선박 초대형화와 함께 선사는 인력 및 조직 감축, 글로벌 운영 효율성 제고, 차별적 서비스 개발 등 경영혁신을 통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선사별 인력, 조직 감축 및 운영효율을 제고하는 일도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빅2 정기선사의 통합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건화물선의 경우는 정기선과 달리 전 세계적인 완전경쟁시장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운경기를 예측하고 이에 근거한 해운투자 및 경영을 해야 하는 산업임을 깨달아야 한다. 즉 과학적인 분석능력과 시장정서를 읽는 경험 있는 인력이 투자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산업이다.
우리해운의 가장 커다란 실패는 1980년의 과다 용선에 의한 용선채무로 부실화되어 해운산업합리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때이고, 2007-8년의 해운시황 초호황기에 고가의 용선과, 신조선 발주하여 현재까지 막대한 손실을 본 것이다. 모두 시황예측을 잘못하고 투자한 결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선사의 조직과 인력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직이 벌크선사임에도 불구하고 정기선해운 같이 관료적인 조직으로 운영되면서 투자 유연성이 떨어졌던 것도 원인이며, 투자를 담당하는 인력이 그룹에서 파견된 비전문가, 과학적 방법을 개발하지 않고 경험만 믿고 투자하던 인력 등에 기인된 것이다.
해운산업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긴다면 미래 성장산업으로 국민경제에 큰 기여를 할 산업이다. 선사들도 전문인력 양성에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고, 의사결정 조직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며, 필요시 합병 등의 구조조정 노력을 단행해야 한다. 정부도 국가경제의 수송인프라인 해운산업 유지를 위한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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