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지음  <허삼관 매혈기> 




 현재 시점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의 소설가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순전히 ‘인천항만공사’가 ‘인천’에 있어서다. 인천에는 화교마을(차이나타운)이 있을 만큼 국내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또 연변 동포를 포함해 많은 중국인들이 첫발을 내딛는 관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한국인인 인천 사람들이 중국인들의 일상적인 생활문화나 사고방식을 쉽게 이해하는 데는 <허삼관 매혈기>가 적격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온 중국인이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큰 소리로 음식을 주문하는 장면은 중국 영화에서 흔하다. 이 소설에 따르면 그가 그러는 이유는 ‘내가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뜻을 담아 식당 주인의 바가지나 속임수 쓰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또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은 것’이라는 중국의 속담이 그저 말로나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실제 품성이라는 것도 이 소설에 나온다. 그들의 성(惺)의식이나 부부 간 재산관리 풍속은 우리의 상식이나 풍속과 너무 달라 읽다 보면 신기할 정도다.


 여기서 잠시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간략하게 먼저 짚어보겠다. 1949년 10월 1일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낸 마오쩌뚱의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 중국 대륙을 접수했다. 건국 초기 제왕적 권력을 확보하지 못한 마오쩌뚱은 1956년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일으켜 저항적 지식인들을 제거했다. 1958년 마오쩌뚱은 근대적 공산국가를 수립한다는 명목으로 ‘대약진 운동’을 전개한다.


 대약진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진 철강생산운동으로 농촌에서는 식기와 농기구까지 모든 쇠가 징발됨으로써 나무 밥그릇으로 밥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대약진운동’의 물살은 마오쩌뚱이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한마디 던지자 온 중국인들이 나서서 참새의 씨를 말림으로써 해충이 창궐, 흉년의 원인이 될 정도로 거셌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은 1962년 초까지 4천만 명이 굶어 죽는 대실패로 끝나고 마오쩌뚱은 국가주석 자리에서 물러난다.


 마오쩌뚱의 뒤를 이은 개혁개방파의 유소기와 등샤오핑 등의 권력이 강화되자 위기를 느낀 마오쩌뚱은 1966년 8월 어린 청소년들을 부추켜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홍위병’이 된 청소년들은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에 대한 계급투쟁을 명분으로 중국 전역을 휩쓸며 ‘전통가치’를 싹쓸이 파괴한다. 마오쩌뚱은 비생산적인 교육을 배격해 전국의 학교를 5년이나 문을 닫게 하는 대신 학생, 청년과 지식인들을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시키는 ‘하방’을 실시한다. 마오쩌뚱에게 숙청당한 등샤오핑 역시 이때 하방을 하게 된다. (정상적인 대학교육은 1976년경부터 다시 재개된다.)


 홍위병을 통해 권력 회복에 성공한 마오쩌뚱에게 인민들의 반감이 큰 홍위병은 골칫거리였다. 마오쩌뚱은 인민해방군으로 하여금 홍위병을 제거하도록 했고, 그들은 깊은 산골로 쫒겨났다. 티벳으로 몰려가 6천 여 사원을 파괴하며 난장판을 쳤던 20십만 명의 홍위병들은 인민해방군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중세 유럽의 십자군전쟁 때 멋모르고 나섰다가 동방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는 해적 사기꾼에 속아 지중해까지 끌려가 노예로 팔려갔던 일군의 청년들처럼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는 ‘철 없는 추종자들’의 종말이 역사적으로 보면 대체로 이렇다.


 1976년 9월 마오쩌뚱이 죽고 정권을 넘겨받은 화궈펑이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마오쩌뚱의 부인 장칭 등 4인방을 체포하면서 문화대혁명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화궈펑을 뒤이은 등샤오핑의 출현으로 중국은 ‘흑묘백묘-힌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를 앞세워 본격적인 개혁개방과 부흥의 길을 걷는다. 1981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극좌적 오류’로 규정해 마오쩌뚱의 책임을 물었고, 이 해에 그의 부인 장칭은 사형을 선고 받는다. (무기로 감형돼 가택연금 중이던 장칭은 199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중국 공산당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이유는 1948년 즈음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의 시점까지 약 30년 정도가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대약진운동. 제강생산운동,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굵직한 현대사가 허삼관의 일생과 함께 하므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서 이 소설을 읽어야 훨씬 이해도 빠르고 재미도 더하게 된다.


 영화로도 많이 알려진 <허삼관 매혈기>의 주인공인 ‘자라대가리(중국에서 남자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 허삼관’은 1948년 즈음 피를 판 돈으로 같은 동네 처녀 허옥란과 결혼을 한 이후 순전히 가족들을 위해 총 10번의 매혈을 한다. 중국인들은 매혈을 조상모독으로 생각하기에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니다. 한 번 매혈에 400ml, 35원을 받는데 9번 째는 매혈 후 쇼크로 700ml를 도로 수혈 받는 바람에 허삼관의 실제 유효 매혈은 8번이다. 모두가 부인과 3명의 아들들에게 큰일이 터져 거금(?)이 필요해서였다.


 가난한 아버지와 가족들의 사랑이 기막힌 풍자와 해학으로 코끝을 찡하게 한다거나, 위화의 일상이 ‘웃프다(웃으면서도 슬프다)’거나,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소설이라는 평가는 기존 독자들이 하나같이 인정하고 추천하는 데서도 확인되는 바다. 다만 ‘너무 재미있게 술술 읽혀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독서 감’이란 말을 전한다. 그리고 소설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중국인들의 매혈 역사에는 그들의 피를 값싸게 걷어들였던 서구 열강의 제약회사 등 기업들이 있었다는 의견도 있음을 전한다.




북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