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에룡~!!

강화도는 오래전부터 적들로부터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섬을 빙 둘러 53개의 돈대를 세웠는데요. 그중 고려 몽골과의 항쟁부터 조선조 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르는 강화도 전적지를 살펴보는 길이 바로 강화나들길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입니다. 오늘은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지난주에 이어 강화나들길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을 마저 알아보도록 할게룡~!! 그럼 해린이와 함께 출발~!!



광성보

강화도 요새의 총사령부였던 광성보(사적 제227호)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한 전장으로 어재연 장군이 이끈 600여 명의 조선 병사들이 신무기로 무장한 1,230여 명의 미 해군과 맞서 싸운 곳입니다. 비록 전투에서 패배해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430여 명의 조선군이 전사하였지만, 열세에도 불구하고 ‘임전무퇴’의 자세를 보여준 조선군의 투지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광성보에는 다양한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신미순의총’, ‘쌍충비각’, ‘용두돈대’가 바로 그곳입니다.



㉮ 신미순의총

신미순의총은 쌍충비각 맞은편 아래쪽에 자리해 있는데요. 신미양요 때 미 해군에 맞서 싸운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조선군 용사들의 무덤입니다. 전사자 어재연 장군과 그 동생 재순을 제외한 군관, 사졸 등 51명의 시신을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고 그 순절을 기린 곳입니다. 어재연 장군과 그 동생 어재순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쌍충비각

쌍충비각은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 등 전사자의 전적과 충절을 기리는 2개의 전적비가 들어있는 건물을 말합니다. 1873년에 세워진 쌍충비 중 하나는 ‘광성파수순절비’로 높이 168cm, 너비 62cm, 두께 25cm의 양면비이고 다른 하나는 어재연·어재순 순절비로 높이 177cm, 너비 58cm, 두께 26.5cm의 양면비입니다. 쌍충비각 옆으로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도 함께 세워져 있어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용두돈대

용두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되어 있는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을 이용해 축조한 돈대입니다. 용두돈대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성벽이 크게 파괴되었는데요.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다시 복원된 곳입니다. 복원 후 용두돈대 안에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뒷면에는 이은상이 짓고, 김충현이 글씨를 쓴 비문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손돌목돈대

숙종 5년(1679년)에 축조한 손돌목돈대는 용두돈대 앞을 흐르는 염하 건너편에 자리해 있는데요. 이곳 역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성벽이 파괴되었고, 용두돈대와 함께 복원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돈대들과는 달리 원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 손돌목돈대만의 특징인데요. 이렇게 독특한 모양의 돈대 이름을 손돌목이라 붙인 데에는 뱃사공 손돌의 전설에서 따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려 고종이 몽골군을 피해 강화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강화해협의 뱃길을 안내했지만, 물살이 위태롭게 움직이자 고종은 손돌이 계락을 품은 줄 착각하고 처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돌은 죽음 앞에서도 왕의 안전을 생각하며,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안전하게 손돌목을 지날 수 있다”고 말한 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안전하게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손돌의 넋을 위로하며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덕진진 앞 좁은 물길을 손돌목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덕진진

강화 12진보 중 하나인 덕진진(사적 제226호)은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였습니다. 1874년(고종 11년)에 축조한 남장 포대에는 15문의 포대가 남아있다는데요. 신미양요 당시 초지진에 상륙한 미 해병대에 의해 점령당하고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문루 터만 남게 된 덕진진은 1967년 보수 및 복원사업을 통해 돈대를 보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던진진의 덕진돈대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는 비석이 하나를 만나볼 수 있는데, 바로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세워진 ‘바다의 척화비’입니다. 비석에는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라’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초지진

강화나들길의 마지막 코스인 초지진(사적 제255호)은 덕진진에서 2.8km 떨어져 강화초지대교가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초지진은 숙종 42년(1716년)에 세워진 곳으로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 때 미국과 일본 해군에 맞서 싸운 곳입니다. 비록 운요호 포격에 의해 초지진 포대가 일시에 파괴되어 폐쇄되고 말았지만 1973년 초지진의 초지돈만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현재 초지진의 초지돈은 타원형의 돈으로 3개소의 포좌와 100여 개의 총좌가 있고, 조선시대 대포 1문이 포각 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호국돈대길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호국돈대길의 풍경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일지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임전무퇴의 자세로 싸운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으신가룡? 다음 주에는 더욱 재미있는 인천 명소로 여러분에게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