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특파룡 11기 정규진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수명이 다한 배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아시나요? 바다 위에서 웅장하게 항해하는 거대화물선이나 최첨단 장비로 건조되고 있는 최신 선박들을 보면 선박의 마지막이라는 이미지는 잘 생각나지 않으실 텐데요. 사실 수명이 다한 선박은 해체업자들의 손에 조각조각 해체된 후 고철과 기계부품이 필요한 업체나 철재상들에게 각각 팔려나가게 되고, 팔려나간 고철과 부품은 다시 재활용되어 다른 철강이나 기계제품을 만드는데 쓰입니다. 그 작업의 근무강도가 매우 높아 선박해체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수명이 다한 폐선을 해체해서 재활용하는 배의 마지막 단계, 선박해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자료 1 - 출처 : pixabay>


1. 선박해체를 하는 이유

선박해체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노후화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폐선을 재활용하기 위함입니다. 건조된 선박은 재활용률이 매우 높아 중량을 기준으로 95%정도는 해체하여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원자재가 부족한 국가에 있어 폐선은 자국 내 원자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고효율의 자원입니다. 보통 선박의 수명을 이야기할 때 25년 이상이 된 선박은 노후선박으로 간주되며 선사의 운영상황, 선박의 노후상태에 따라 해체를 결정하게 됩니다. 물론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선박도 해체됩니다. 선사는 해체대상 선박을 선박해체 전문 업체에게 매각하고, 선박해체업체가 선박을 해체하여 고철들과 잉여 부품들을 매각합니다. 두 번째는 선사의 경영사정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의 선복량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공급과잉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해운산업의 상황과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해상운임은 갈수록 내려가고 있고 경영여건은 더욱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선사들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운항해봤자 수익이 나지 않거나 운항비, 유지비가 더 많이 들어 적자를 가져오는 선박인 비경제선은 해체업체에게 매각해버리고 수익을 많이 가져다주는 경제선을 주로 운항하게 됩니다. 때문에 건조된 지 7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선박을 해체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세계 해운경기가 나빠질수록 선박해체 산업은 호황을 맞고, 반대로 해운경기가 호황이면 선박해체산업은 불황을 맞습니다


<자료 2 - 출처 : pixabay>

2. 선박해체업의 특성

최첨단 설비와 수준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집약적 산업인 선박건조와 다르게 선박해체는 그리 수준 높은 기술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대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달라붙어 절단기로 직접 선체를 자르고 선박 조각에 밧줄을 묶어 직접 끌어 옮기는 등, 선박해체산업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그렇기에 첨단기술은 부족하지만 인건비가 저렴한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에서는 매우 적은 수의 업체만이 먼 바다까지 나갈 수 없는 작은 선박들이나 특수선에 대해 해체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박해체는 매우 위험한 작업입니다. 무거운 기자재에 깔릴 위험과 최소 1,000의 불꽃을 내뿜는 산소 용접기를 다루는 것은 물론 폭발 위험이 있는 선박 내 폐유, 선박을 절단할 때 폐유와 공기가 합성되어 발생하는 유독가스와 먼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선체 내부에서 절단작업을 할 때 매우 제한된 시야 내에서 작업해야 하는 등 높은 수준의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전문 노동자가 작업하지 않는다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큰 작업입니다. 실제로 작년 11월 파키스탄 가다니의 선박해체장에서 유조선을 해체하던 중 남아있던 폐유로 인해 폭발이 발생해 노동자 12명이 숨지고 58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박해체작업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시키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선박해체작업은 해변과 갯벌에서 이루어지는데, 선박절단 시 유독가스가 발생해 공기오염을 유발하고, 해체작업시 발생하는 폐유, 석면, 중금속, 각종 찌꺼기 등 부산물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게 됩니다. 친환경적인 선박해체를 위해 선박 내 유해물질을 관리하고 체계적인 수거와 처리를 의무화한 국제협약이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작업장 및 다수의 작업장에선 유명무실한 것이 현실입니다.


<자료 3 - 출처 : pixabay>

3. 선박해체 과정

선박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 폐선을 육지에 있는 해체장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대개 좌주라는 방식을 사용하게 됩니다. 폐선은 해체장 연안까지 운항할 정도의 연료만 공급받아 목적지까지 항해를 하고, 연안에서 해체장의 해변까지 예인선이 폐선을 예인하게 됩니다. 만조 상태의 해변에 도착한 뒤 시간이 흘러 간조가 되어 갯벌이 드러나면 그 위에서 해체작업을 하는 것이죠. 인양이 완료되면 남은 연료를 빼내고 작업자들에게 해로운 화학물질을 분리합니다. 그 후 선체 내부의 기계부품들과 자재들을 분리해내고 선체를 절단합니다. 마지막으로 분리해낸 잔여부품, 자재들을 분류해 자재상들에게 팔아넘깁니다. 환경오염 방지와 작업환경 첨단화를 위해 설비를 투자할 여건이 충분히 되는 선진국들은 드라이 독방식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별도의 밀폐된 설비 내에서 선박을 해체하고 오염물질들은 밀폐설비 내에서 제거해 해양오염을 방지하는 방법입니다. 대다수의 선박해체가 이루어지는 곳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아닙니다.


<자료 4 - 출처 : pixabay>

4. 선박해체 현황

앞서 말씀드렸듯이 선박해체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노동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중국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전 세계 선박해체의 약 85%는 이 네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국가들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큰 해안, 갯벌을 가지고 있어 좌주 방식에 적합하며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이 있어 선박해체산업이 발달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철이 귀한 나라로, 선박해체를 통해 얻는 철 스크랩으로 자국 내 철 수요의 상당량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선박해체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것은 너무나도 열악한 근무환경입니다. 작업의 특성상 매우 높은 수준의 안전기준이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체노동자들은 방열복과 방진마스크 등 최소한의 보호구와 안전장치도 없이 하루 임금 천 원 정도를 받으며 이 위험한 작업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알랭에 위치한 해체장에서는 1년에 약 300명이 작업 도중 사망합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작업 내내 석면과 먼지, 유독가스에 노출되어 있어 많은 수가 호흡기질환을 앓습니다. 선박의 좁은 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들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근무환경이 개선될 여지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고용주측은 날마다 발생하는 끔찍한 산업재해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체장 인근의 빈곤층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아서 빈민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체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선박해체산업은 개발도상국의 원·부자재 획득과 고용창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개선을 위해 섣불리 손을 대기에도 곤란한 실정입니다.


5. 선박해체 관련 국제협약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선박해체에 관련된 국제협약은 노동환경 개선보다는 환경오염 방지에 중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2009년 홍콩에서 채택된 선박재활용협약입니다. UN 산하의 노동관련 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해체작업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유해물질의 국경간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협약 사무국 측에서 폐선 거래 시 유해물질이 그대로 폐선 안에 남아 수입되는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힘입어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선박재활용협약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 협약은 선박의 건조시 유해물질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건조하고 선박의 건조부터 해체까지 전 구간에 걸쳐 선박 내 유해물질을 목록화해 관리하며 해체 시 적절하게 처리할 것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박해체시설에선 선박재활용계획을 제출해 시설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 협약의 영향으로 선주들은 자신이 보유한 500톤 이상의 국제운항선박에 대해 유해물 리스트를 작성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유해물관리에 초점이 맞춰졌고, ‘선주라는 단어에 대해 애매한 정의를 내리고 해야 할 의무를 명확하게 부과하지 않는 등 부실하고 선주에게 면책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조약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 조약은 아직까지도 발효가 되고 있지 않으며 2020년까지 발효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입니다.


<자료 5 - 출처 : pixabay>

6. 마치며

기사를 쓰기 위해 혼자 공부를 하면서, 해상운송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이렇게 어두운 그늘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선주가 많고 신조선이 주로 이루어지는 선진국이 쓰고 남은 폐선과 유해물질을 버리고, 그것을 목숨 걸고 처리하는 것은 제3세계의 노동자들임을 보면 세계경제의 불균형 발전과 개발도상국의 노동환경, 인권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조선 강국으로써 해체산업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선박해체는 지구 자원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꼭 이루어져야 할 작업입니다. 웅장한 거대 선박이 푸른 바다 위에서 장대히 항해하는 모습 뒤에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생계를 위해 일하는 지구 반대편의 다른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