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비에이블 펴냄)

 

2019년 5월 “빈센트 반 고흐 갤러리 북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고흐의 그림을 사랑하고, 알고, 보게 될 좋은 기회”라고 했었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는 그 책의 저자인 김영숙 미술사 전문가의 2020년 신간이자 인기작이다.

 

‘엥겔지수’는 가계 전체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측정한 수치다. 독일 통계학자 엥겔이 이 수치를 조사했더니 저소득층일수록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더라는 것이다. 학자의 연구가 아니더라도 당연한 이치다. 의식주 중 먹는 식(食)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기본 중 기본인데 가난할수록 끼니를 잇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내일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집의 가장이 가족들과 고급식당에서 값비싼 요리를 먹고,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일이란 비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육체적 생존과 건강을 위한 식료품을 넘어 정신적 건강을 위해 다양한 지출을 할 여력이 풍부한 나라를 우리는 줄여서 ‘선진국’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막강해졌다. 그만큼 엥겔지수도 낮아졌다. 여행과 레저, 취미활동에 쓰는 지출액이 갈수록 늘어난다. ‘주방장’이었던 사람이 ‘쉐프’로서 연예인 급 대우를 받는 스타 대열에 합류하고, ‘맛칼럼니스트’가 새로운 돈벌이로 떠오른 것도 오래 된 일이다. 등산을 위한 아웃도어 시장이 세계적이고, 값비싼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순례하는 속칭 ‘라이딩족’ 행렬이 줄을 잇는다. 어지간한 자치단체는 교향악단을 꾸리고 있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이는 모두 배를 채우는 일을 넘어 문화, 예술, 오락, 스포츠 등 정신건강을 위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르다’는 말은 사실이다. 훌륭한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음악 귀,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감상할 줄 아는 심미안(審美眼), 깨진 기왓장의 문화미에 감탄하는 지적 능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투자를 해야 얻을 수 있다. 투자는 사랑이다. 우리에게 그런 것들에 대한 투자욕구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은 선진국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365”>는 장차 서양의 화가와 미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솟는 사람이 단기에 감상력을 키우는데 독서의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일년 365일 동안 하루 한 페이지씩, 일주일 단위로 편성된 일곱 개 분야별로, 서양 미술을 공부, 감상, 깨우치도록 글과 그림으로 구성됐다. 일곱 개 분야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순서에 맞춰 ‘작품, 미술사, 화가, 장르와 기법, 세계사, 스캔들, 신화와 종교’로 나누었다. 이 책의 첫 일주일 분을 페이지 순서대로 소개해보겠다.

 

<001. 월. 작품>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비극적으로 죽는 오필리아를 그린 캔버스 유화와 그림 탄생의 배경을 다뤘다. <002. 화. 미술사> 기원전 3만 7천년 전에 그려진 ‘쇼베 동굴벽화’를 소재로 <원시미술 1>을 이야기한다. <003. 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두 점을 소재로 화가 고흐의 삶에서 ‘자화상 그림’이 갖는 의미가 14줄로 정리됐다. <004. 목. 장르와 기법> 안드레아 만테냐가 이탈리아 궁궐의 천장에 그린 그림을 소재로 소토 인 수 (Sotto In Su, 아래에서 위) 기법을 설명한다. 천장이 열린 듯 확장된 느낌을 주는 방식인데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시대까지 크게 유행했다.

 

<005. 금. 세계사> 에드가르 드가가 그린 <운동하는 스파르타의 젊은이들>을 소재로 스파르타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이야기한다. <006. 토. 스캔들> 수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샤티의 초상>을 소재로 몽마르트의 뮤즈 수잔과 <짐노페디>로 알려진 작곡가 에릭 샤티의 순애보를 이야기한다. 에릭 샤티는 떠나버린 수잔을 위해 <난 너를 원해 Je te veux>라는 곡을 남겼다. <007. 일. 신화와 종교>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를 소재로 고대신화와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고야의 의도를 설명했다. <008. 월>은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 대한 해설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그림을 소개하는 책인 만큼 저자의 전작인 “빈센트 반 고흐 갤러리 북”처럼 글과 그림의 편집이 깔끔하고, 종이와 인쇄 또한 매우 고급스럽다. ‘하루 한 페이지씩 일년 365일’에 상징적으로 맞췄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하루에도 독파가 가능하고, 두고두고 이 페이지, 저 페이지 들썩이며 다시 보면 되는 책이다.

 

 

 

북칼럼니스트 최보기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