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초대” (김경집 지음, 교유서가 펴냄)

《명사의 초대》 저자인 인문학자 김경집 전 가톨릭 대학 교수는 《엄마 인문학》을 필두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사(名士)다. 물론 이곳에도 《인문학은 밥이다》《고전, 어떻게 읽을까》《청소년을 위한 진로 인문학》 등 저서가 소개됐었다. 명사(名詞)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인데 보통명사, 고유명사, 추상명사 등이 있다. 동사(動詞)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명사가 고요히 머무르는 성찰이나 정지라면 동사는 박차고 나가는 행동이나 도전이다.

 

동사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명사(名士) 최준영의 《동사의 삶》(2017. 푸른영토)에 제목으로 쓰였다. 최준영이 “동사의 삶은 척박한 현실을 비관하지 않아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삶이거든요”라고 말하듯이 지금껏 치열하게 전개해온 그의 역동적 삶이 담겨있는 책이다. 그는 지금도 수원에서 개인적으로 만든 인문학 도서관 ‘책고집’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 중이다. 《동사의 삶》을 썼을 때 그의 나이는 51세로 추정된다.

 

《명사의 초대》를 낸 김경집은 61세이다. 일반적으로 50대까지는 동사의 삶이, 60대부터는 명사의 삶이 중심에 놓이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두 저자의 글쓰기로부터 유추가 된다. 고로 《명사의 초대》가 《동사의 삶》에 비해 지극히 조용한, 오랜 철학자의 인생 성찰이 담긴 것은 당연하다.

 

‘오르골’부터 ‘참기름’, ‘차표’까지 모두 48개의 명사를 주제로 철학자가 익히고 겪은 지식, 정보, 통찰, 교훈, 지혜가 정중히 ‘초대’된 이 책의 33번째 명사는 ‘감나무’이다. 저자가 어렸을 때 집 마당이나 뒤란에 있던 감나무는 과수원에나 있던 사과나 배나무와 달리 아이들에게는 소중하고 친숙한 간식창고였다. 그러나 집집마다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감나무가 있는 집 아이가 ‘갑’이었고, 여름 비바람에 떨어진 땡감은 소금물에 우려 떫은 맛을 빼고 맛있게 먹었다. 또 감물을 만들어 염료로 썼고 방부제로도 썼다. 익은 감, 홍시, 곶감은 물론 비타민 C가 풍부한 잎까지 차(茶)나 고혈압을 다스리는 약재로 썼다. 감꼭지 역시 딸꾹질, 구토, 야뇨증 등을 치료하는 한약재로 쓰였다. 곶감은 맛있기도 하지만 해소, 객혈에도 효능이 있다. 옛날에는 골프 드라이버의 헤드도 감나무를 썼고, 고급가구의 목재로도 쓰였다.

 

이밖에도 감나무의 쓰임새는 다양했지만 저자는 특히 감나무의 ‘7덕5절(七德五節)’을 높이 쳤다. 긴 수명, 무성한 잎이 만드는 짙은 그늘, 예쁜 단풍, 넓은 잎에 하는 글씨연습(文),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 화살(武), 겉과 속이 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은 심지(忠), 이가 약해진 어르신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배려(孝), 서리를 맞으면서까지 매달려 있는 기개(節)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마지막 절(節)에다 끝에는 까치의 밥이 돼주는 사랑(博愛)을 덧붙이고 싶다.

 

저자는 혹시 마당 너른 집에 살게 되면 감나무를 한 그루 심고 싶은데 그것은 감을 따먹는 재미보다 가끔씩 감나무를 쳐다보면서 감나무의 7덕5절을 음미만 해도 몸에 이로운 수양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곶감 빼먹는’ 즐거움도 누리면서, 너른 감나무 잎에 안부 인사 곱게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한 삶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도시의 아파트 3층에 살았을 때 거실 창문 밖으로 황홀한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늘이 진다는 민원으로 어느 날 관리실에서 감나무를 싹둑 베어버리는 바람에 속이 많이 상했던 일을 철학자는 지금도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유년이 깃든 고향집과 함께 김준태 시인의 시 ‘감꽃’을 떠올렸다.

 

‘어릴 적에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참고로 감나무가 7덕5절을 지녔다면 2년 전 이곳에 소개했던 오현식의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농민신문사)에는 해독에 최고인 미나리의 4덕이 있다. 한겨울 칼바람과 얼음장을 견딜 만큼 ‘근성 있는 미나리’에는 진흙탕에서도 때 묻지 않고 자라나는 심지(心志), 응달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 가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 한파와 대결하는 결기(決起)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