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로 공공영역의 혁신에 대해 고민하고 컨설팅을 하는 컨설턴트입니다. 이러한 저의 직업 탓에 최근 공공영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 실현’, ‘혁신’, ‘적극행정’ 등의 용어가 제 개인적으로는 매우 반갑습니다. 제가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대상 혁신 컨설팅을 하고 새로운 사업, 제도, 과제를 제안했을 때 종종 마주하던 ‘좌절’을 해소해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실무진들께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정책 및 사업 과제를 제안했을 때 많은 경우 보이는 반응이 ‘위원님, 그렇게 일하면 뭐합니까? 결국 감사나 받아요. 이거 누가 책임지나요?’입니다. 이러한 반응을 마주할 때 마다 한 명의 컨설턴트로서, 그리고 한 명의 국민으로서 커다란 좌절감을 느낍니다. 어쩌다 우리 공공기관이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제가 얼마 전 경험한 사례를 통해서 우리 공공기관들의 모습을 한번 되돌아 보려 합니다. 얼마 전 저는 한 호텔에 일주일 정도 투숙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호텔에서는 제 투숙 일정 동안 매일 5벌(piece)의 옷에 대해 세탁 서비스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틀 동안은 5벌을 맞추어 넣었다가 하루는 실수로 7벌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별도 요금을 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담당자께서는 ‘총 투숙 기간 동안 세탁한 옷을 일할 하여 기준을 초과하면 그때 과금 하겠습니다.’ 하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넘치게 이용해도, 어느 날 적게 이용하면 추가 과금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게 되면서 ‘참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일하네’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공공기관이라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겠습니까? 열에 아홉은 매일 매일 추가 건에 대한 정산이 이루어 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일하는 근거인 ‘법, 제도, 규정, 지침’이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법, 제도, 규정, 지침’은 왜 우리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제한’하고 있을까요. 바로 권한의 ‘남용’ 때문이겠습니다. 융통성, 유연성이라는 실무자의 운신의 폭이 커질수록 권한 남용이 쉬워지기 때문에 이를 제하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법, 제도, 규정, 지침’ 안에서만 생각하고, 이를 보호막 삼아 숨으려는 경우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바로 ‘소극행정’의 사례이겠습니다.
민간 기업은 ‘이윤 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이자 생존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끊임 없이 혁신하며 스스로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필요하다면 업무 절차와 규정까지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공영역은 어떻습니까? 혁신이란 매우 피곤하고 불필요한, 나와는 상관없는 업무이며, 혁신을 해도 누구도 책임져 주거나 이행하려고 하지 않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아 버렸습니다. 더 좋은 정책,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대응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우리는 수 년 전부터 정해져서 변할 생각이 없는 ‘법, 제도, 규정, 지침’을 제시하며 그 뒤에 숨어 버린 채 ‘공공성’ 조차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과 생존 방식은 무엇입니까?
현 시점에서 공공기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바로 ‘경영평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기관들이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최근 경영평가 결과를 보며 전문가 집단에 의한 정형화 된 계량/비계량 지표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국민 눈높이’ 혹은 ‘국민 체감도’가 반영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이라면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전문가 집단’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보다는 ‘국민’과 우리 ‘고객’이 바라보는 우리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과거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효율성 중심이어서, 전문가 집단 중심의 시각이어서, 우리가 법, 제도, 규정, 지침 같은 정해진 가이드 라인에 충실했고, 자칫 소극행정의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가치 실현이 강조되고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 ‘적극행정’을 요구 받는 이 시기에 ‘국민 눈높이’에서 시작한 혁신으로 우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KMAC 안근홍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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