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구도(求道)의 길이 있다네

걷는 자의 기쁨” (박성기 지음, 마인드큐브 펴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고 사람들의 피로감 역시 극에 달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그리우면 누구라도 만날 자유가 제한된 이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반가운 책 이 나왔다.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여행을 읽는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최인아 책방’ 대표 최인아 씨의 ‘길을 잃었거든 홀로 오래 걸어 보시라’는 글의 제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14년 전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마침내 갈 길을 찾았다는 회고담이었다. 이 칼럼을 읽고 나니 아주 오래 전에 접했던 건국대 류태영 농학박사의 자전적 이야기가 기억났다. 1960년대 가난했던 나라의 가난했던 청년이 나아갈 길을 찾아 새벽기도에 몰입하다 농업 부국 유학이라는 답을 얻어 주소도 모르는 덴마크 왕실에 편지를 보내 뜻을 이뤘다는 사연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생생한 사례로 청춘인 필자의 도전정신을 자극했었다. 이들을 볼 때 길과 기도는 길을 잃은 사람이 길을 찾는 길임이 분명하다.

 

신간 《걷는 자의 기쁨》 저자 박성기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로부터 ‘박대장’으로 불리는, 20년 경력의 자유도보여행가다. “박대장과 함께 걸은 달마고도, 은비령, 자작나무숲, 함백산은 그대로 내 영혼의 소울로드였다”는 박경희 교사의 고백에서 그가 이끄는 걷기 여행의 내공이 읽힌다. 여행이 전업은 아닐 터인데 더구나 사진과 문장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추측된다. ,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걷기 황홀한 우리나라 35개의 길을 엄선해 사진과 문장으로 소개하는데 역사, 문학, 풍경, 인심이 적재적소에 어우러지는 인문학적 여행기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사십 리 걸음걸음마다 봄볕 구도(求道)의 길, 해남 달마고도’에서 시작된 길은 ‘여름이 길을 잃은 정선 덕산기 계곡’, ‘가을의 전령이자 한국의 차마고도 정선 새비재’를 거쳐 ‘무채색 겨울을 연출하는 한탄강을 지나 인천의 협궤열차와 소래길’에서 발길을 멈춘다.

 

소래길은 인천대공원→습지원→장수천→남동교→만수물재생센터→소래습지생태공원→전시관→소래포구→소래역사관까지 13Km 4시간 가량 걷는 길이다. ‘소래습지를 따라 소래포구로 가는 길인데 난이도는 하급으로 걷기 쉬운 길에 속한다.

 

소금을 싣고 인천과 수원을 오가던 협궤열차는 더 이상 운행하지 않고 시민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소래가 다시 습지로 살아나고 있다. 생명의 생태환경으로 살아나고 있는 소래길을 걸어간다. 남동체육관을 지나면 점점 풍경은 갯가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만수물재생센터를 지나 소래습지에 들어서면 350만㎡의 광활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 펼쳐진 소래습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한다.

 

갈대숲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키를 넘는 무성한 갈대숲을 따라 걷다 보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이따금 만나는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 옛날 1등 염전의 모습은 갈대밭에 숨겨져 앙상하게 녹슨 뼈대만 남은 소금창고로 살펴볼 뿐이다. 시간은 이렇게 옛 모습을 사라지게 한다. 생로병사의 인간 모습과 닮아 한참을 자리에 머물러 본다. 소래습지는 담수습지와 기수습지, 염수습지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길은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바닷길을 건너는 다리로 남은 철교 옆 어시장은 덤이다.”는 것이 저자 박성기가 걸어본 소래길의 감상평 요지다.

 

우리나라 24개 풍광 뛰어난 섬들을 느리게 걷는 스테디셀러 《여행은 재즈다》 (강성일 지음. 말글 펴냄. 2019)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 언젠가는 반드시 카메라와 연필 한 자루, 노트 한 권을 담은 배낭을 메고 느릿느릿 걸어야 할 길과 섬들이 늘어만 간다. 터벅터벅 걷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의 마음이 한층 조급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