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의 마음을 훔친 세계의 광고들
“광고, 다시 봄” (정이숙 지음, 나남출판사 펴냄)
2020년 2월 10일, 봉준호 감독이 신화를 썼다. 세계 넘버원 영화제인 미국의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에서 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기생충’이 감독상, 최우수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휩쓸어버린 것이다. 소위 ‘봉준호, BTS, 김연아’ 보유국인 한국의 문화예술(한류)이 세계의 정점에 우뚝 선 날이었다.
1970년대 가열찬 산업화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서 소비시장이 급속히 커지던 1980년대부터 젊은이들에게 광고대행사는 선망의 직장으로 떠올랐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작으로 연결시키는 그래픽 디자이너, 한 줄 문장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카피라이터(Copy Writer), 제작을 지휘하는 PD, AD 등이 인기 전문직으로 부상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카피를 창작한 카피라이터나 해당 광고 모델이 유명인으로 부상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덕분에 광고예산이 많은 대기업 홍보실도 인기가 높아졌다. 그 시절 국내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신문 광고 한 편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그날도 선생님은 어김없이
두 개의 도시락을 가져오셨읍니다.
어느때는 그중 한 개를 선생님이 드시고
나머지를 우리에게 내놓곤 하셨는데,
그날은 두 개의 도시락 모두를 우리에게 주시고는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 하시며
교실 밖으로 나가셨읍니다.
찬물 한 주발로 빈 속을 채우시고는
어린 마음들을 달래시려고
그 후 그렇게나 자주 속이 안 좋으셨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긴 세월이 지난 뒤였읍니다.
선생님의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고
선생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운 우리는,
이제 50고개를 바라보는 왕성한 중년들.
그 옛날 선생님의 꿈나무였던 우리는
기업에서, 교단에서,
공직에서, 농어촌에서,
연구기관에서, 봉사단체에서
나름대로 사람 값을 하고자 열심히 살고 있읍니다.
살아계신다면,
걸어오신 칠십 평생이 한 점 티 없으실,
그래서 자랑과 보람으로 주름진 선생님의 얼굴에
아직도 피어계실 그 미소를 그리면서
그때의 제자들이 다시 되고픈 마음입니다.
한글맞춤법이 ‘~습니다’로 바뀌기 이전의 ‘~읍니다’로 쓰던 시절,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란 제목으로 유명했던 쌍용그룹의 일명 ‘도시락 광고’ 카피 전문이다. 광고는 제품에 대한 언급 없이 은사님과 도시락 이야기만 함으로써 중년들의 심금을 울려 기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끌어올렸고, 그것이 제품의 판매로 이어졌다.
《광고, 다시 봄》의 ‘봄’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도시락 광고처럼 감동을 주는 세계의 명품 광고들을 ‘다시 본다’와 해당 광고들의 카피와 비주얼을 30년 광고쟁이(카피라이터)로 살아온 저자 자신의 일상과 엮어 희망과 꿈을 찾아내는 ‘사계절 중 봄’이다.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겨울에서 봄 사이, 다시 봄>을 모데라토, 긴장을 놓치지 않는 보통 빠르기로 걸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찾는다.
아주 옛날, 엄마와 함께 ‘빨래금지’라고 쓴 경고문이 붙은 동네 목욕탕에 가서 가수 싸이의 광고송 ‘좋은 날이 올 거야’를 들으며 받았던 새 봄과 새 희망의 메시지, 가을이면 안방 문에 붉은 단풍잎 몇 장을 넣은 새 창호지를 발랐던 어린 시절의 감동처럼 판매를 위한 선전이 아니라 진심이 드러나는 광고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던 어느 아파트 광고, 기념일 많은 5월의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가장 특별한 선물은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라는 감정이입의 몰래 카메라를 책 곳곳에 설치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질문의 답은? 사랑 하나로 산다! 이 책의 사계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 카피에 흐르는 그 사랑으로 산다.
이 책은 특히 광고가 소재인 까닭에 세계 명작 광고의 영상, 그래픽, 카피, 음악(CM송), 추억을 함께 즐기는 재미가 있다. 광고산업 분야에 진출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는 광고에 대한 철학과 영감을 던져줄 실전(實戰) 메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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