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에룡~!!

 강화나들길 제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은 온수공영주차장부터 가릉까지 16.2㎞를 잇는 구간으로 고려왕릉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지난주에 이어 강화나들길 제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을 마저 살펴보도록 할게룡~!! 그럼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강화나들길 걸어 볼까룡~!



길정저수지

강화나들길 제3코스의 중간쯤에 자리 잡은 길정저수지는 강화도 최대의 저수지로 1885년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길정저수지는 나들이객들에게 시원한 풍광을 선사하는데요. 길정저수지는 또한 낚시꾼들에게도 인기 있는 포인트라고 해요. 붕어, 잉어, 가물치 등 어종이 다양하고 특히 겨울철 배스 낚시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수지 주변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펜션들에서 강화도 여행의 숙박을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이규보 묘

이규보(1168∼1241)는 고려 무신정권이 시작되기 2년 전인 극도의 혼란기에 태어나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당대의 걸출한 문사였습니다. 문인으로서 화려한 관직의 등용과 순탄한 벼슬길을 꿈꾸었던 이규보는 여러 번 좌절과 시름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결국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라는 높은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죠. 이규보는 명조 때 문과에 급제했으나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천마산으로 들어가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글을 쓰며 지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천마산지’ 등을 썼는데, 특히 영웅 서사시 ‘동명왕 편’은 민족의 영웅 동명왕의 생애와 발자취를 노래한 서사시로써 우리 문학사에 남긴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고려의 이태백’이라 불린 이규보의 묘는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터가 대범하고 한없이 편안해 보입니다. 묘소 뒤로는 작고 푸른 소나무가, 먼발치 앞으로는 곧게 뻗은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습니다. 묘는 아주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봉분 앞에 상석이 놓이고, 석등이 하나 서 있으며, 양옆에는 망주석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꾸며지지 않아 화려함보다는 간결함이 돋보입니다.


현재 강화도에 남아 있는 고려의 능은 석릉, 곤릉, 홍릉, 가릉의 4기뿐인데 규모는 아주 작고 봉분과 망주석과 혼유석 정도의 시설밖에 없으며 호석과 난간석을 갖춘 전형적인 왕릉 구조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강화나들길 3코스에 있는 곤릉과 석릉, 가릉에 대해 알아볼게요.



곤릉

곤릉은 고려 22대 강종(康宗)의 비(妃) 원덕태후(元德太后)의 능인데요. 원덕태후 유씨는 신안후(信安候) 유성(柳城)의 딸로 강종 원년(1212) 왕비에 책봉되어 연덕궁주(延德宮主)라 하였고, 고종(高宗)을 낳았으며, 고종이 돌아가신 후 시호를 원덕태후라 하였다고 합니다.



석릉

석릉은 고려 희종(1169∼1237)의 능인데요. 희종은 신종의 장남으로 1204년에 즉위하였습니다. 희종은 즉위의 공으로 최충헌을 문하시중·진강군 개국후에 봉하였는데 그의 횡포가 심하자 내시 왕준명 등과 함께 그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계획은 실패했고 희종 7년(1211)에 폐위되어 강화 교동에서 지내다가 고종 24년(1237) 8월에 승하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석릉은 붕괴되어 없어진 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4년 보수 정화했다고 해요.



가릉

가릉은 고려 원종(1259∼1274, 재위)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입니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로 책봉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그다음 해에 충렬왕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고종 31년(1244)경에 사망하여 이곳 가릉에 안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가릉도 석릉과 마찬가지로 폐허이던 것을 1974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 정화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알아본 강화나들길 제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 어떠셨나룡? 가을 바람이 살랑이는 이번 주말에는 저수지부터 고려왕릉까지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나볼 수 있는 강화나들길 제3코스 산책하시러 꼭 한번 가보시길 바라요! 다음 주에는 인천항만공사 해린이가 더욱 볼거리 많은 인천 명소로 다시 돌아올게룡~ 그럼 다음 주에 만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