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에룡~!!

지난주 이 시간에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강화나들길 제1코스 1편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남은 제1코스에 대해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걸어갈까룡?



지방 교육의 본산, 강화향교


고려궁지에서 약 1km를 걸으면 강화읍 관청리에 자리한 강화향교(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4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강화향교는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며, 백성 교화 및 지방 중등교육의 장소로써 고려 1127년, 고려산 남쪽에 세워졌습니다. 강화향교는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겼는데요. 지금의 자리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624년 강화유수 심열이 강화향교를 복원하면서부터였습니다. 5년 뒤인 1629년에는 명륜당까지 세워 비로소 학궁이라 부를 만큼 향교로써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현재 강화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 내외 삼 문이 남아 있고, 동·서문은 터만 남아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과 송조6현, 한국 18현의 위패가 봉헌되어 있다고 합니다. 




강화를 수호하는 문, 강화북문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산성의 북문으로 문루의 이름은 ‘진송루’입니다. 강화산성은 1232년 고려의 강화도읍기에 내성으로 축조되었는데요. 산성은 개경으로 환도할 때 몽골의 요구로 헐렸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조선 전기에 강화성을 다시 쌓았지만,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숙종 때 성을 보수하면서 남산까지 포함해 넓혔다고 합니다. 




바람이 머무는 곳, 연미정


북문에서 6.5km 떨어져 있는 연미정(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은 강화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등 인천에서 이름난 명소 중 하나입니다. 연미정은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하진 않지만 고려시대 왕이 구재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면학케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미정’이란 이름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서해와 인천으로 흐르는 물길의 모양이 제비 꼬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팔각지붕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지은 민도리집으로 지붕 선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또한 연미정은 강화팔경으로 꼽힐 만큼 예로부터 달맞이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하네요. 또한 두 그루의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연미정 옆에서 그 자태를 뽐내며 운치를 더해 잠시 쉬었다 가기에 알맞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천주교 순교지, 갑곶순교성지


연미정에서 약 6km 걸어 강화대교 부근에 이르면 갑곶순교성지를 만날 수 있는데요. 갑곶순교성지가 조성된 데에는 제널러셔먼호 사건(1866)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를 빌미로 신미양요(1871)가 일어났으며, 이후 흥선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과 ‘우윤집’, ‘최순복’ 등이 잡혔고, 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고 전해지는데요. 이후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문헌상에 있는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매입하여 순교성지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갑곶순교성지는 순교자 묘역과 더불어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장하고, 그 행적을 증언하며 성직자들을 보호한 박순집의 묘, 예배당,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강화나들길 제1코스 종점, 갑곶돈대


강화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갑곶돈대는 고려와 몽골 사이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습니다. 이후 조선 숙종 때, 갑곶돈대가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갑곶돈대의 주요 역할은 경계 및 외적의 척후 활동이었으며, 적이 침략할 경우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갑곶돈대에 입장할 경우 강화전쟁박물관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린이와 함께 강화나들길 제1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을 돌아봤는데요.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 더불어 자연경관까지 모두 살펴볼 수 있었던 나들길이었던 것 같아요. 다음 주에도 여행하기 좋은 곳을 들고 여러분들에게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