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린이에룡.

지난 주에는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역사인

일제강점기의 인천항까지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드디어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광복 이후의 인천항에 대해 살펴볼게요!





해방 후 우리나라는 독립국가로 홀로 서지 못하고

열강들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됩니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하죠.


1946년 7월 대외무역규칙 1호에 의해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부산, 군산, 묵호 등과 함께

 무역항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 인천항.

이 때는 상당부분의 무역을 미군정이 주도하는

국가무역형태를 보이게 됩니다.


인천항은 곧 우리나라의 총 수입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항구로 자리잡게 되면서,

서울의 관문도시이자 산업물자의 조달항 기능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1946년 94% / 1948년 85.4% / 1949년 88% 


특히 이때는 입지 여건상

중국과의 무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한국 내의 화교상들이 본국과의 무역에서

인천항을 본거지로 활용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계속 성장세를 이어갈 것만 같던 인천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또 한 차례의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기존에 무역이 성행하던 한국전쟁 이전 시기와 달리

전쟁 기간 중에는 원조 수입이 급증하게 되는데요.

위치 상 인천항은 항구로서의 역할을 거의 상실합니다.





특히 중앙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부산항이 크게 성장하게 되고,

결국 국내 제1항의 지위를 부산항에 넘겨주고 맙니다.





한국전쟁이 인천항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줬는지

짐작이 되지 않나요?


오늘은 이렇게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시기의

인천항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다음에는 전후 복구와

전쟁 후 인천항의 발전 과정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보아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