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 전신)는 1907년 4월 3일에 관립인천일어학교 안에 임시 교사를 설치하고, 5월 6일에 학생 3명으로 개교하였습니다. 그 해 6월에 사립 제녕학교를 병합하면서 74명의 학생을 받아들였는데, 계속 학생이 늘어나 12월 20일에 우각현(현 창영동)에 목조 건물을 세워 이전하였습니다.


1910년 3월 26일에 첫 졸업생 18명을 배출했고, 1912년에 이르러는 학생 수가 348명에 달했습니다. 같은 해 사립 인명학교를 통합하여 여자학급을 신설하였습니다. 또 인천공립간이상업학교가 부설되어 7월 18일부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921년에는 조선교육령 개정에 따라 수업 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었습니다.





현재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는 구교사는 1922년부터 옛 건물을 차례로 철거하고 4차례에 걸쳐 붉은 벽돌 건물을 교사를 신축한 것입니다. 이 건물은 긴 네모골의 평면으로 면과 선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지붕에는 도머창(지붕 아래 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지붕창)을 설치하였고, 현관과 1층 창문은 반원아치로, 2층은 수평아치로 마무리한 전형적인 초기 근대건축 양식의 건물입니다.


1933년 4월 1일 인천제일공립보통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36년 10월 1일 인천창영공립보통학교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1938년 4월 제3차 개정 조선교육령으로 인천창영공립심상소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1941년 4월 1일 국민학교령에 따라 인천창영공립국민학교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1946년 7월 1일 남자 143명, 여자 123명 총 266명의 해방 후 첫 졸업생을(통산 36회) 배출하며 초등교육을 담당했으나, 6·25전쟁으로 1950년 6월 27일 임시 휴교했다가 수복이 되면서 경기도경찰국이 사용하던 교사를 다시 찾아 개교하였습니다. 1953년에는 학생 수가 총 3천 52명에 달했습니다.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세워진 인천공립보통학교 주변에는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교와 고서점 거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인천 3·1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창영초등학교 내에는  3·1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또한, 현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져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의 모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