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룡~!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에룡~!!

바닷속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물론 해양 조사선들의 노력으로 바닷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바닷속을 확인한 것은 아니기에 언제나 인간의 탐험 대상이 되어 왔는데요. 오늘은 바로 ‘심해 탐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주를 향하는 인간의 탐험 의지는 매우 뜨거운데요. 1969년, 최초의 달 탐사를 시작으로 인간은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기술발전을 이룩하는 등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아직 인간이 완벽하게 정복했다고 볼 수 없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요. 일명 ‘심해’라고 불리는 저 깊은 바닷속입니다. 



심해는 깊은 바닷속을 의미하며 200m 그 이상의 바닷속을 말합니다. 심해는 물의 압력이 매우 높고, 빛이 들지 않아 깜깜한데요. 따라서 인간이 특수 장비 없이 그 이상을 탐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인간의 탐험 의지는 꺾을 순 없었는데요. 바로 심해 탐사를 위해 많은 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해 탐사는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이 되어 왔는데요. 하나는 ‘해양 조사선’이고, 다른 하나는 ‘심해 잠수정’입니다.



해양 조사선으로 가장 먼저 심해 탐사를 시도한 것은 바로 영국의 ‘챌린저호’였습니다. 1872년 12월부터 1876년 5월까지 무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 바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생물 표본과 관측 자료를 수집한 배가 바로 ‘챌린저호’인데요. 챌린저호는 해양 탐사를 통해 전 세계 바다의 수온과 해류, 수심, 생물 등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현대 해양학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4천여 종에 달하는 해양 생물 자료에는 많은 심해 생물들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당시 챌린저호는 심해 연구를 위해 바닥 밑바닥까지 닿는 그물을 던져 끌어 올리는 방법을 통해 심해 탐사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의 심해 탐사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물론 기술이 발전한 만큼 다양한 전자 장비와 음향 장비가 함께 사용되고 있어 더욱 정확하고 효율적인 탐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심해 탐사의 다른 방법인 심해 잠수정은 챌린저호보다 한참 이후인 1930년에 등장했는데요. ‘배시스피어’라고 명명된 심해 잠수정은 4cm 두께의 강철로 만들어진 공 모양의 형태를 갖췄다고 합니다. 지름 144cm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과학자와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석영으로 된 두 개의 창으로 바깥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해상 위의 배와 굵은 강철 줄을 연결했으며 강철 줄 속에 전선을 심어 잠수정에 동력을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통신도 했다고 하는데요. 미국의 동물학자였던 윌리엄 비브 박사는 이러한 설비에 의존해 잠수정을 타고 내려가 심해의 생물을 자세히 묘사했고, 묘사한 내용을 배 위의 화가가 내용을 듣고 그림으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심해 잠수정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 2006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에서 개발한 ‘해미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해미래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바로 ‘무인 잠수정’이라는 점인데요. 길이 3.3m, 폭 1.8m, 높이 2.2m, 무게 3.6t인 해미래는 수심 6,000m까지 잠항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해미래를 소개하자면 해미래가 보여준 활약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해미래는 수심 2,050m 깊이의 울릉분지 바닥에 태극기가 새겨진 동판을 두고 왔으며, 또한 울릉 분지 탐사를 통해 ‘불타는 얼음’이라고 알려진 ‘메탄하이드레이트’ 부존 해역을 발견하기도 했답니다. 해미래의 빼어난 활약 덕분에 우리나라 심해 탐사 영역도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인천항만공사 해린이와 함께 심해 탐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마냥 미지의 세계였던 캄캄한 바닷속인 심해도 언젠가 모두 밝혀지길 기대하며 오늘 글은 여기서 줄일게룡~!! 그럼 다음 주에 만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