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린이에룡.


한국전쟁 당시 인천항은 유엔군과 북한군에 의해

거듭해서 점령되면서 시설 및 항만이

상당 부분 파괴되어 기능이 거의 마비되었는데요.






오늘은 이렇게 위기를 맞이한 인천항이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부터는

국가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인천항의 기능이 회복되기 시작하는데요.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부산항에 내줬던

중심항만 역할은 바로 되찾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 시기의 인천항은 무역항의 기능보다는

경인공업지대의 산업 원자재 수입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즉, 산업항으로서의 면모를 띠게 된 것이죠!





1955년부터 1959년까지는

단기 항만사업 5개년 계획이 정부에 의해

수립·진행되는데요.


이로 인해 인천항은

접안시설 증강, 하역시설 기계화,

대형선박 접안시설 설치 등의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인천항 제2선거* 축조계획에 의해서

연간 하역능력이 130만톤에서

260만톤으로 크게 증가하게 되었답니다.


*선거 : 선박의 건조나 수리 또는 짐을 싣고 부리기 위한 설비


1956년에는 인천지역 섬에 사는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항로보조규정>을 공포·시행하여

주변 도서에 여객선을 취항시키고 보조금을 지원해주게 됩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린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한 인천항!


그 이후에 지금까지 더욱

눈부시게 발전한 인천항의 과거가 궁금하시다면?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