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의 소중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ㅣ현대문학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명언은 이제 박물관에나 전시돼야 할 유물이 돼버릴 모양이다. 책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 거기다 대통령 선거까지 끼어있다 보니 출판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얼굴빛이 노랗게 바래버렸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책으로 인해 그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입 안의 사탕처럼 당장 그 단 맛을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더욱 안 읽힌다. 때문에 미래가 달라질 확률이 낮아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묘수는 없을까? 좀 가볍게 책에 접근해 책에 재미를 붙여 나가는 것도 그 중 한 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을 골랐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의 대표적인 장르 소설가다. 대체로 추리나 판타지 소설을 장르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 역시 주인공들이 타임머신인 나미야 잡화점에서 과거의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설정부터가 공상이다. 그런데 그 설정이 역시나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매우 치밀할 뿐만 아니라 긴박하게 읽히는 속도가 빠르고, 무게는 가볍다.


도쿄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외곽의 소도시. 이곳에 사는 아쓰야, 쇼타, 고헤이는 불량한 청년들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좀도둑질을 작당하고는 돈 많은 여자 사업가 무토 하루미의 별장에 잠입한다. 물론 그럴만한 다른 이유가 소설에는 있다. 그런데 갑자기 별장에 들른 그녀와 맞닥뜨린다. 그녀를 포박시키고 돈과 차를 훔쳐 달아나던 이들은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경찰의 추적을 피해 미리 점 찍어 뒀던 폐가에 몸을 숨긴다. 그 폐가는 이미 오래 전에 주인이었던 노인 나미야 유지 씨가 숨을 거두면서 문을 닫았던 나미야 잡화점.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졌던 유지 씨는 어느 날 잡화점 벽에다 고민을 상담 받는 일을 시작한다. 처음엔 거의 장난 수준. 고객들도 주로 어린 학생들이라 벽에 붙은 쪽지의 고민들은 기껏해야 공부하지 않고도 시험에서 백 점을 맞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산타클로스가 왔으면 좋겠는데 굴뚝이 없어요. 지구가 원숭이의 혹성이 되었을 때 누구에게 원숭이 말을 배워야 하나요?’처럼 황당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유지 씨는 그런 고민들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답장을 써서 내붙였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진지해졌다. 진짜 고민을 상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프라이버시가 존중돼야 할 상담은 담벼락 대신 잡화점 앞쪽의 우체통과 뒤쪽의 우유상자가 활용됐다. 유지 씨의 활력도 눈에 띄게 넘쳐났다. 그러다 유지 씨가 숨을 거두면서 고민 상담도 자연스레 중단됐던 것. 참고로 나미야와 비슷한 나야미는 일어로 고민이란 단어다. 이 또한 작가의 교묘한 설정이었다.


바로 이 잡화점에 잠입한 좀도둑들이 우체통의 상담편지를 읽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유지 씨 대신 상담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편지들이 모두 과거로부터 오는 편지라는 것. 인터넷 검색으로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이 누군지를 대충 알게 되는 주인공들은 상담자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담에 응하게 된다. 여차하면 그들이 쓰는 답장이 상담자의 미래를 뒤바꿀 수도 있는 상황이 소설이 갖는 긴장과 교훈, 재미의 핵심이다.


사람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했다. 누군가가 농담으로 던진 한 마디가 듣는 사람에게는 독화살이 될 수도, 희망을 불어넣은 보약이 될 수도 있다. 고로 말을 가려서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바로 경청’,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경청을 잘 하는 사람을 천사라 한다면 이 세 명의 루저들은 경청과 애정 어린 상담의 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천사로 거듭나버린다.


  그것이 기적이다. 물론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을 해 오는 사람들도 답장을 통해 용기를 얻어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기적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니까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기적들을 통해 누구나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격려를, 사람은 누구나 기본은 선의에서 출발한다는 따듯한 인간애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상대방은 물론 자신에게까지 매우 소중한 선물이라는 감동을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