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미치다 보면 직업이 될 수도

“천마산에 꽃이 있다”

조영학 지음글항아리 펴냄


필자가 사는 곳은 인천 바로 옆 부천이다. 왠지 두 도시는 천(川) 자 돌림의 형제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 역까지 걷는 동안 참나리꽃, 수국, 비비추, 에키네시아, 긴산꼬리풀, 꽃댕강나무, 패랭이꽃을 도로변 화단에서 보았다. 사진을 함께 싣지 못해 아쉽지만 꽃 하나하나가 그리 예쁠 수가 없다. 7개 꽃의 이름을 다 알았던 것은 아니고 인터넷 검색이나 꽃 전문가에게 물어 나중에 알게 된 꽃들도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름을 알고 보는 꽃과 모르고 보는 꽃은 그 느낌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필자에게 꽃과 식물을 다루는 책 중에 자주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을 묻는다면 ‘’꽃의 제국’’(강혜순 지음)과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오현식 지음)이 대표적이다. 이 두 책은 지난 해 이 지면에도 어김없이 소개가 됐다. 다만 아쉽게도 “꽃의 제국”은 출판사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지금은 서점마다 품절 상태다.


무림도처유고수(武林到處有高手)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했다. 무림 곳곳에 무예 고수들이 있듯 사람들 틈에도 어느 한 분야에서 절정에 오른 대가(大家)들이 곳곳에 있다는 뜻이다. ‘천마산에 꽃이 있다’ 저자 조영학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좀 특이한 고수다. 주업인 번역가보다 취미나 일상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 SNS(소셜네트웍스)에서 유명세를 더 탄다. 


가족을 끔찍이 사랑해 날마다 그가 차리는 집밥(요리)이 인기가도를 달린다. 몇 년 전에는 요리를 즐기는 남자들의 이야기인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2015. 메디치미디어)란 책의 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지금은 ‘상남자 조영학의 집밥 이야기’란 언론사 칼럼이 인기다. 밥상과 밥상 사이 그가 사는 경기도 남양주 외곽에 있는 천마산에 훌쩍 가서 찍어온 사시사철 야생화와 그가 농작물을 직접 기르는 텃밭 소식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절대적이다. 아마도 인기의 배경은 그의 일상을 통해 야생화도 알고, 요리도 배우는 한편 전원생활을 그리는 도시사람들이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비결을 물으면 하나같이 ‘처음부터 성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즐기다 보니 어느 순간 성공해 있었다’는 답변이 번역가 조영학에게서는 전혀 식상하지가 않은 것이다.


천마산(天摩山)은 812m 고산으로 산림청이 지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한다. 고려 말 이성계가 “산이 높아 손이 석자만 더 길어도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란 뜻의 이름을 갖게 됐다. 예로부터 봄꽃이 유명해 3~4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야생화 애호가들이 천마산계곡으로 몰려든다. 저자 조영학도 천마산을 ‘야생화의 보고’라고 단정한다. 그냥 ‘야생화’라고 하니 느낌이 전혀 오지 않을 것이다. ‘앉은부채,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변산바람꽃, 둥근털제비꽃, 복수초, 처녀치마, 노루귀, 현호색, 노랑앉은부채, 가지더부살이, 삼지구엽초, 선괭이눈, 박새, 금꿩의다리, 설중화, 산괴불주머니, 홀아비바람꽃, 중의무릇, 금낭화, 원추리, 새며느리밥풀, 쑥부쟁이, 여우오줌, 얼레지’라 하니 어떤가? 비로소 꽃들이 의미가 돼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3월에 피는 ‘앉은부채’부터 10월에 피는 ‘산국’까지 140종 이상의 꽃들이 잘 찍은 사진과 함께 각자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저자 조영학은 야생화 전문가답게 사진 찍는 솜씨도 고수여서 식물도감에서 보는 밋밋한 사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록으로 민들레, 벼룩나물. 생강나무, 올괴불나무 등 풀과 나무 101종의 예쁜 사진들이 ‘잡초도 꽃이다’, ‘천마산에 나무꽃이 있다’로 별도 편집됐다. 


“베려 하면 잡초 아닌 것이 없지만 품으려 하면 꽃 아닌 것이 없다”는 이 책의 인용문에서 생각이 한참을 머물렀다. 당장 책장을 넘기자니 지난 봄의 출근길에 흔하게 보면서도 이름을 몰라 답답했던 꽃이 봄망초와 큰개불알풀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겠다. 다행이 부천 성주산, 시흥 소래산, 인천 계양산에도 꽃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