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도서관 대출목록 상위권에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언제나 드는 책이다. 그래서 화제가 더 되기도 한다. 무척 두꺼운 책이고 통속적 재미도 그다지 없다. 그럼에도 자주 화제에 오르다보니 책 좀 보는 지식인으로서는 궁금증 때문이라도 읽어봐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하는 고전이다.

그런데 제목만 봐도 저자가 밝혀 낸 사실의 80%는 짐작이 간다. ‘은 과학기술, ‘은 낯선 환경, ‘는 선진문명이다. 방대한 세부탐사는 외우려 할 필요 없이 슬렁슬렁 읽으며 제목으로 알아 챈 메시지를 확인하면 될 책이다. 두껍고 학술적인 내용에 비해 오히려 독서가 편한 책이다. 평균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거의 없으며 핵심은 이렇다.

지구상 어느 지역이든 인종의 머리는 우열의 차이가 없다. 다만 그들이 처한 환경의 차이가 문명 발전의 우열을,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의 운명을 갈랐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 핵심 메시지의 방증은 크게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유럽 문명의 원천인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힘의 중심을 왜 지금의 서유럽 지역에 빼앗겼느냐는 것이다.

둘째,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이 서로 독립적으로 살면서 발전하다가 불과 15세기에 만났는데 왜 아메리카가 유럽을 정복하지 못하고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하게 됐느냐는 것이다.

셋째, 중국의 황하문명은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 4대 발명품의 원천지였고 유럽보다 앞선 문명을 이어 왔는데 중세 이후 왜 유럽에 뒤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넷째, 그런 일들을 초래한 이유가 바로 <, , >였는데 정복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의 기로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바로 근처의 섬 뉴기니에서 극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초기에 문명이 발달하면서 숲들이 마구 파괴되었다. 그런데 강우량이 적다 보니 숲의 재생이 문명이 저지르는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황폐화 되었다. 반면, 북유럽과 서유럽은 강우량이 많아 식물이 더 빨리 재생하는 행운이 따랐다. 북유럽과 서유럽은 지금도 여전히 집약적 농업이 이뤄지고 있다. 농작물, 가축, 기술, 문자 등을 모두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받아들인 셈인데자연 환경때문에 힘의 중심을 차지한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들이 들어올 당시 유럽과 같은 문자체계와 정치조직은 물론 소, , 돼지 등 대형 가축들이 없었다. 당연히 그들로 인한 전염병균들도 없었다. 소수의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일거에 정복하게 된 초기 전투는, , 철제 무기 중무장이 요인이었다. 거기에 소, , 돼지, , , 염소 등 온갖 가축들과 부대끼는 사이에 생긴 유럽의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흑사병 같은 병균들에 의해 원주민들은 고비고비 전멸하다시피 했다.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이 양 대륙의 힘을 갈랐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에 의해 처음 통일제국이 된 중국은 이후 몇 번의 분열이 있긴 했지만 계속적인 통일제국의 길을 걸었다. 황제 한 사람의 명령 한 마디면 100년의 후퇴도 가능했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반면 유럽은 14세기까지 1,000 개에 달하는 독립소국, 1500년에는 500개 소국, 1980년 대에도 25개 국을 유지하다 최근에 다시 40 개 국으로 늘었다. 유럽의 통일이 어려운 것은 중국의 단순한 해안선과 달리 고립된 큰 반도가 5 개나 되는 복잡한 유럽의 해안선과 지형 때문이다. 유럽의 분열과 경쟁이 중국을 제치게 된 요인이었고, 그건 지형적 환경과 관계가 깊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의 정복과 피정복의 차이는 원주민들의 우열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병원균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인들에게 치명적인 병원균이 적은 대신 농업과 산업을 위한 환경이 좋았기에 아메리카처럼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했다. 반면 뉴기니는 살만한 지형은 좁은 대신 유럽인들에게 치명적인 토착병균들 때문에 그들의 정복을 피할 수 있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두껍고 방대한 <, , >의 끝을 이렇게 정리했다. “모든 문화적 차이는 환경적 차이의 산물이다. 역사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역사의 진행에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히틀러, 알렉산더, 아우구스투스, 석가, 예수, 마호메트, 레닌, 마틴루터, 정복왕 월리엄 등의 개인적 특이성도 역사의 예측을 어렵게 하는 큰 변수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 때문에 역사는 환경적 요인은 물론이고 그 어떤 원인으로도 일반화 시켜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의 법칙 하나는 과거의 우위가 결코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