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스 아키나리 지음 <철학 비타민>
‘철학’에 대한 아주 오래된 고전 유머가 있다. 벽촌 시골의 수재 청년이 명문대 철학과에 합격해 그의 아버지가 전 재산 격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열었다. 평소 유식하기로 소문난 마을 원로 어르신께서 그 청년에게 물으신다.
-무슨 과에 합격했는고?
-철학과입니다.
-오, 잘했군 잘했어. 졸업하고 포항제철에만 들어가면 최고지 최고야.
인문학이 떴다. 인문학 교수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대우받고, 그리 미남도 아닌 철학자가 공중파 TV 강의로 스타가 됐다. 인문학을 흔히 ‘문사철’이라고 한다. 문(文)은 시나 소설, 사(史)는 역사인데 철(哲)의 철학이 좀 간단치 않다. 철학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인터넷 포탈에서 검색해보면 ‘철학 : 도대체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르는 학문’이란 정의가 실제로 있다. 거기에 동양철학, 서양철학으로 나누는 단계까지 가면 머리가 아프고 만다.
그런데 인문학이 뜨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설명서들이 많아졌다. 가장 최근에 출판된 ‘엄마 인문학’(김경집 지음. 꿈결 펴냄)은 엄마들의 인문학 입문을 위해 참 좋은 책인데 이 책의 저자 김경집은 철학을 논하는 장에서 ‘심오한 사유로 뽑아 올린 석학의 한마디가 전광석화 같은 깨우침을 줌으로써 내 삶의 주인을 나로 만들어 주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라고 설파한다.
또 지난 해 출판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철학 에세이 집 ‘철학자와 하녀’(고병권 지음. 메디치 출판)도 읽어볼 만하다. 이 책 제목의 유래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이다. 탈레스가 어느 날 하늘의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것을 본 하녀 트라케가 “탈레스는 하늘의 것은 보면서 발치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며 깔깔거렸다는 일화다. 그런데 저자는 트라케의 조롱이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몸은 지구에 있는데 정신은 별에 있어 발치도 못 보는 철학자와 발등만 보느라 자신이 어디로 걷고 있는지 모르는 하녀가 모두 틀리고, 모두 옳기 때문이다. ‘삶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면 그 삶은 노예적’이라는 철학자의 말도 옳고, 삶의 절실함이 없다면 지식은 한낱 유희나 도락에 불과하다는 하녀의 비판이 모두 옳다. 한쪽이 옳은 부분에서 다른 쪽이 틀리기 때문이다.
저자 고병권은 철학의 가치가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말한다. 철학은 한마디로 다르게 느끼는 것, 다르게 생각하는 것, 다르게 보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철학자와 가난하거나 어렵고 힘든 사람은 서로 잘 통한다. ‘다르게 사는 철학=일깨움’을 얻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하녀’에 뒤이어 출판된 ‘철학 비타민’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그 철학적 일깨움에 다가설 수 있는, 말 그대로 비타민 같은 책이다. 그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 바로 탈레스인데 뒤이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테카르트, 베이컨, 루소, 파스칼, 칸트, 헤겔, 니체, 프로이트는 물론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가장 최근의 마이클 샌델 교수까지 서양철학 올스타 청백전이다.
특히 이 책이 유익한 것은 ‘고매하신 철학자가 고매하신 철학자를 설득하는 철학적 철학’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익히 들어 알고는 있으나 그 깊은 뜻을 제대로 모르는 철학적 화두들을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가면서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철학이란 원래 ‘자연이란 무엇인가?’라 묻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시작됐는데 ‘자연철학=이과, 자연철학자=이과 교사’”라는 식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헤라클레이스토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스피노자),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파스칼), 신은 죽었다(니체) 등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철학자들의 일갈이 진정 무슨 뜻이었는지 명쾌하게 정리가 된다.
‘정리가 된다’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얻음으로써 방황, 무기력, 실패, 두려움, 좌절을 벗어날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상황에서 전광석화처럼 고정관념을 깨고 마침내 갈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철학 비타민 한 알로 세상이 이전과 다르게 보이고, 내가 바뀌는 기회의 책이다.
북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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