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성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호. 해발 224m의 산정부를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 에워싼 석축산성입니다. 문학산이라고 하면 인천사람들은 한번 쯤 들어보았을텐데요, 익숙하지만 조금은 낯선 문학산에 숨겨진 인천의 기념물 문학산성을 다녀왔답니다.

 

 

 

 

 

▶ 위치 :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 남구 학익동, 연수구 연수동 (문학산)

▶ 명칭 : 문학산성(文鶴山城)

▶ 문화재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1호

▶ 문화재 지정일 1986년 12월 18일

▶ 크기 : 높이 약 1.5m ~ 4m, 길이 577m

▶ 시대 : 고대/삼국, 백제시대

▶ 상세문의 : 인천광역시 남구 문화예술과 [032-880-4667]

 

 

문학산성을 찾아 문학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해룡이와 해린이는 문학정보고등학교를 지나가는 코스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문학정보고 정문에서 시작하여 언덕길로 쭉쭉 올라가보도록 해요~

 

언덕에 오르면 캐나다 주 교육부 소속 공립학교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앞을 보시면 문학산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 잘 보고 따라가세요~

 

 

 

캐나다 공립학교를 지나 걷다보면 문학어린이집이 나옵니다. 잘 따라오셨어요~^^

어린이집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인천둘레길 이라는 안내판도 붙어있고~

 

 

인천둘레길의 시작을 알리듯 벽화들이 반겨줍니다.

 

 

여기가 가는 길이 맞나 의심이 들 수 있지만 염려 마시고, 이정표를 따라 올라오시면 이렇게 종합안내도와 함께 터널이 나온답니다.

 

 

 

 

인천광역시 남구 역사탐방로 학산둘레길 종합안내도입니다.

문학산은 학산 둘레길에 포함된 코스였네요. 해룡이도 몰랐던 사실~!

잠시 학산 둘레길에 대해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학산둘레길 홈페이지에서 내용 발췌]

http://namgu.incheon.kr/home/culture/haksan.asp

학산 둘레길은 전통시대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있는 문학산의 기존 등산로를 재조명하여 남구 역사 바로알기와 자연 생태체험을 할 수 있도록 개발한 탐방로입니다.

 

□ 학산 둘레길 코스

문학레포츠공원 → 학산서원 터 → 갑옷바위, 술바위 → 삼호현 → 문학산성 → 길마산 전망대 → 산신우물 → 인천 도호부청사 및 인천향교

 

□ 학산 둘레길 정보

- 문학 레포츠 공원 : 문학공원 내 레포츠 시설지구로 체력단련시설, 극기훈련시설, 다목적 운동장, 어린이놀이터, 피크닉장, 배드민턴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학산서원터 : 학산서원은 인천 유일의 사액 서원으로 1708년(숙종 34) 창건 이래 1871년(고종 8)에 단행된 서원정리에 따라 훼철되어 터만이 남게 되었다. 지금은 문학산 터널공사로 인해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고, 인천시립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추정지로 예상되는 자리의 서측편인 현재의 위치에 ‘학산서원터’라는 표지석을 설치하였습니다.

 

- 갑옷바위 : 옛날 어떤 장군이 인천에 난리가 나면 이곳을 구원해 준다고 하며 이곳 바위 밑에 갑옷과 투구를 숨겨놓았는데, 금기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안관당을 지키는 당지기(일명 무당)는 호기심에 그 바위 안에 숨겨놓은 장군의 갑옷을 확인하려 했고,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 몰래 도끼로 바위를 내리치는 순간 그만 벼락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바위의 중간이 깨져버리면서 갑옷도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 술바위 : 옛날 이 바위에는 신기하게도 술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지나가는 길손이 사모지 고개에 접어들어 쉬어 갈 때 바위에서 여인이 나와 술 석 잔을 권하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때 술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지만 딱 석 잔만 마실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근처를 지나던 중이 술 석 잔을 비우고 욕심을 부려 더 마시려 하자 여인은 사라지고 그 이후로 다시는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 삼호현 : 4세기경 백제에서 중국으로 출항하는 배를 댄 곳이 연수구에 위치한 한나루(능허대)였고 문학산 사모지고개(삼호현)는 그곳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였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을 배웅하는 가족들이 ‘잘다녀오시오’ 세 번 인사하며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하여 삼호현이라 했는데 이후 사모지 고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 문학산성 : 문학산 정상부분에 있는 돌로 만든 산성으로, ‘미추홀 고성’, ‘남산성’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동사강목』과『여지도서』에 의하면 문학산은 백제 미추왕의 도읍지로 돌로 만든 산성의 터가 있고, 성안에 비류정이라는 우물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상의 봉우리를 돌로 둘러싸며 성벽을 두른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의 둘레는 내성이 100m, 외성이 200m로 성 안에는 봉수대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정상부에 군부대가 들어서고, 대부분의 성벽이 붕괴되어 그 모습을 모두 볼 수는 없으나, 일부 구간은 등산객의 안전과 원형보존을 위해 보수해 놓았습니다.

 

- 길마산 전망대 : 문학산 다섯 봉우리 중 길마산에 있는 전망대로 문학경기장, 인천향교, 인천도호부청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 산신우물 : 이 우물을 '산신(産神) 우물'이라고 하는데, 우물에 대해서 예로부터 전해 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즉, 이 우물에 가서 치성을 하면 태기가 없던 사람도 아기를 얻게 되므로 사람들이 '산신 우물'이라 일컬어 왔던 것입니다.

 

- 인천도호부청사 : 인천에 도호부가 설치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 학자이자 명신(名臣)인 강희맹(姜希孟)이 쓴 (인천부) ‘승호기(陞號記)’에 1424년 이미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최소한 그 이전에 도호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천도호부에는 부사의 집무처인 동헌(東軒), 내동헌(內東軒)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현재는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객사와 동헌 일부만 보존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위치에 재현한 건물들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화도진도(花島鎭圖)』를 근거로 객사, 동헌, 공수 등 7동의 건물을 복원한 것입니다.

 

- 인천향교 : 인천향교는 『신증동국여지승』에 최항(1409~1474)의 향교) 중수기(重修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세조대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향교의 주요 건물로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중국 성현의 위패를 모신 동·서무, 교육생들의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처소인 동·서재 등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인천향교는 불타 없어지고 위패만 간신히 모시다가 숙종 27년(1702년)에 지금의 향교모습으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자 이제 터널을 지나 문학산을 올라가 볼까요~?

 

 

 

조금만 걸으면 나타나는 둘레길 이정표입니다. 걱정 마시고 올라가세요~!

 

 

 

어서오세요~

 

 

그리 높지 않은 문학산! 오르다 보면, 드디어 문학산성이 멀지 않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그를 따라서 우리는 올라가봐요~

 

 

 

 

힘들다고 생각해도 잠시라는거 잊지마시고 힘을 내세요!

 

 

 

이렇게 전망대도 있구요~ 문학산성은 인천항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정도 떨어져 있고 문학산 정상근처에 오르면 인천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답니다.

 

 

 

문학산이 남구와 연수구에 이어져 있어서 전망대에 올라오니 연수 둘레길이라는 표시가 되어있네요^^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인천의 주요 건물들입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잘 안보여서 아쉬웠어요 ㅠㅠ

 

 

 

 

날이 흐려도 높은곳에 올라오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ㅎㅎ

 

인천이 한눈에 보여 좋고, 숲속 향도 좋고, 인천에 대해 한걸음 더 알게되어 좋은 기회랍니다.

문학산성을 찾아 문학산에 올라보세요.

 

 

 

 

전망대를 지나 숲속을 걷다보면, 드디어 문학산성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문학산성의 현황도도 보구요~

 

 

 

아직 문학산성 가까이 가기 전이지만 풀과 나무 사이로 보이는 성이 보이시나요?

바로 문학산성이 코앞에 있답니다. ㅎㅎ

 

 

 

 

 

문학산성 설명 안내판앞에서 찰칵~!! ^^*

문학산은 학이 날개를 펴고 앉은 것 같다해서 붙인 이름이라 전해온다고 합니다.

문학산성은 비류가 이곳에 나라를 세울 때 세운 성이라 전해오는데 임진왜란 때는 백성들이 성안으로 들어가 일본군의 수차례 침략에 맞서 끝내 성을 사수하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싸워 지켜준 우리의 선조들에게 감사를 해야겠어요..ㅎㅎㅎ

 

 

 

이제 본격적으로 문학산성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사진 속 나무 계단이 보이시죠? 저 계단으로 올라가야합니다. 경사가...많이 높아요 ㅠ.ㅠ 다리를 최대한 펴고 올라가세요~ㅎㅎ

 

 

 

짠, 이렇게 해서 올라온 문학산성!

문학산성 성벽의 길이는 577m이고, 이 가운데 현존하는 부분은 339m입니다. 성에는 동문과 서문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동쪽에 작은 수구가 남아있습니다. 우물이 있었으나 매몰되었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역시 없어졌습니다.

문학산성은 임진왜란 때에 인천부사 김민선이 옛 성을 수축하여 지키면서 여러차례 왜적을 무찌르다가 병으로 죽자, 김찬선이 이어받아 끝까지 성을 지켰으며 동문 밖  100여보 되는 곳에 왜군이 쌓은 성터가 있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 이래의 토기편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이 작은 산성에서 임진왜란때 왜적을 물리친 것은 역사상 특이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옛 선조들이 지켜낸 인천을 생각하며 역사와 인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랍니다.

아이들도 올라올 수 있는 문학산이니 걱정마시고 같이 올라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산에 산만 있는것이 아닌 인천의 기념물과 학산둘레길의 코스들을 다녀볼 수 있기 때문에

문학산에 올까말까 망설였던 분들이 계시다면 망설이지 마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이렇게 문학산성을 보고 내려오면 돌 먹는 나무라고 재밌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도 볼 수 있습니다.

 

 

 

흙길을 밟고~ 밟아~

흙길을 걸어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이렇게 주말에 한번쯤 흙길을 걸어보시는건 어떨까요? 우리에게 심신의 안정과 정서적 여유까지 가져다줍니다. ^^

 

 

 

 

문학산성도 다 봤으니, 해린이와 해룡이는 삼호현쪽으로 걸어내려갔습니다.

 

▶ 삼호현 : 4세기경 백제에서 중국으로 출항하는 배를 댄 곳이 연수구에 위치한 한나루(능허대)였고 문학산 사모지고개(삼호현)는 그곳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였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을 배웅하는 가족들이 ‘잘다녀오시오’ 세 번 인사하며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하여 삼호현이라 했는데 이후 사모지 고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인천 둘레길 9코스의 시작은 사모지고개(삼호현)이네요! 와우~^^

다음에는 해린이와 해룡이가 인천 둘레길을 소개시켜드릴게요~

 

 

삼호현을 보고 문학레포츠공원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  문학 레포츠 공원 : 문학공원 내 레포츠 시설지구로 체력단련시설, 극기훈련시설, 다목적 운동장, 어린이놀이터, 피크닉장, 배드민턴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광범위한 공간에 시설들이 잘 되어있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 추천추천!!

 

 

 

이번주말이나 휴가 때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1호 문학산성을 찾아 문학산에 오르시는건 어떨까요?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문학산을 방문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