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한반도 분단의 기원” (오코노기 마사오 지음, 류상영 외 옮김, 나남출판사 펴냄)



‘586세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386’의 연장인 ‘586’은 ‘나이 50대, 1980년대 대학생, 196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에 대한 상징어다. 이 조어의 배경이 1980년대 격렬했던 민주화 운동이었으므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이 더 정확한 뜻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586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을 꼽자면 한길사에서 펴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좌우파의 극심한 대립과 친일파 부활, 남북분단과 민족상잔의 6.25 전쟁과 냉전시대 군사대결로 이어지는 역사의 비극을 학자,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지식인들이 모여 조명한 책이었다. 이 책이 워낙 운동권 학생들에게 선풍적으로 읽히자 정부에서 ‘읽으면 처벌하는 금서’로 묶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 해석에 정답은 ‘거의’ 없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규정했던 역사학자 E.H.카의 말처럼 역사는 보는 자의 현재 위치에 따라 해석이 변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란 규정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집필했던 저자들의 역사 해석에 반기를 드는 비슷한 제목의 다른 책들 또한 출판됐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반도 분단의 기원”은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가 한국 내 정치정세와 특정 세력의 영향력에 구애 받지 않고, 눈치도 살피지 않는 제 3자의 객관적 시각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1986년에 이미 “한국전쟁: 미국의 개입과정”이라는 책의 출판을 통해 한국전쟁 연구에 큰 획을 그었었다. 이 책은 1970년에 공개된 방대한 양의 미국 외교문서를 장기간 분석해 집대성한 연구업적이었다. 이번 “한반도 분단의 기원”은 저자가 “한국전쟁”에서 분석한 것보다 앞선 시대, 즉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으로부터 미ㆍ소 냉전이 개시되던 시기를 집중 분석해 한반도 분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반도 분단이야말로 한국전쟁의 더 근본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머리에 편집된 장제국 동서대 총장의 ‘추천사’가 가장 훌륭한 서평 자체라 발췌, 요약한다.


저자는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서 냉전으로 옮겨가는 전환기적 공백상황에서 미국의 이념주의적 발상과 구(舊) 소련의 지정학적 불안감이 서로 첨예하게 충돌함으로써 결국 한반도 분단이 초래되었다고 분석했다. 양대 강국의 외세에 따른 결과라는 저자의 분석이 맞다면 해방 후 남과 북의 독자적 정부 수립에 관여했던 당시 한반도 지도자들에게 전적으로 남북분단의 책임을 묻기엔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해방 후 남북분단의 과정에서 국내 민족주의자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규명함으로써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국내파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발 빠른 기회주의적 움직임, 국제적 신탁통치를 구상한 미국과 김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 간의 긴장,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과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승만의 등장 등은 독립과 통일이라는 또 하나의 ‘상극관계’를 탄생시켰다. 즉, ‘독립을 달성하려면 통일이 불가능해지고, 통일을 실현하려면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불편한 상태’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바로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거대한 국제정치적 전환기에도 철저히 분화하고 분열했던 한국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은 물론 한미, 한중, 한러, 한일, 북미, 북중, 북러, 북일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모두 한반도 분단이 원인이다. 이런 가운데 날로 첨예해지는 G2(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또 하나의 거대한 지각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남북 간의 이념적, 군사적 대결과 혼란스런 국내 정치상황은 또 다른 상극을 만들어 낼지 모른다. 그 상극이 무엇이 되건, 강대국들은 결국 타협하려 할 것이고 이는 한반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예견이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상극구조가 발생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전개임을 시사한다.


비스마르크는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또 ‘역사는 반성하지 않은 자에게 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하는 벌을 준다’는 명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