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힐링과 용기를 얻는 책
파울로 코엘료 산문집. 문학동네 펴냄.
‘전 세계 160 여개 나라 66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한
우리시대 가장 사랑 받는 소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십대 시절의 정신병력과 청년 시절의 반정부 활동, 히피, 저널리스트, 락스타, 배우, 희곡작가, 연극연출,
희곡, TV프로듀서, 음반회사 중역, 그리고 작가. 책 서두에 출판사에서 소개한 작가의 대충 경력이다.
작가의 인생이 마치 범람한 강물 같은데 100개의 토막 에세이 모음인 <흐르는 강물처럼>은 범람 후
안정을 찾은 거대한 강물의 담담한 삶의 성찰이다. 폭풍 같은 삶을 살아 온 노작가의 깨달음이 삼박사일
끓여서 우려낸 한 사발의 담백한 사골국물로 남은 느낌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흐르는 강물처럼’ 읽기가 편하다. 100 편의 짧은 글들은 모두 작가가 한평생 직접
겪었거나, 들었거나, 깨우쳤거나 하는 일들이다. 창작이나 공상이 아닌 체험담이라 피부에 와 닿는데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와 차동엽 신부의 <무지개원리>가 합쳐진 책이라면 딱 맞을 것 같다.
더운 여름밤 편안한 힐링과 함께 자기계발서 류가 주는 자극이 있다는 뜻이다.
조그만 삶의 조각들로부터 예리하게 톺아 낸 ‘편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 좌절과 고난을 극복 하라는
정신적 위로와 유머’를 통해 작가가 끊임없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랑, 관용, 배려, 감사’이다.
독자는 그 네 가지를 가지고 살면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도 삶도 편해지겠다는 설득을 순간순간 당한다.
작가는 손자에게 연필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한다. 연필은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 신이 있어 당신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연필은 깎아야 계속 쓸 수 있다. 사람도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연필은 지우개가 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연필의 핵심은 외피가 아니라 심이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마지막으로 연필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작가는 산책을 좋아한다. 스틱을 구해 ‘노르딕 워킹’을 흉내 냈는데 몸의 반응이 너무 좋아 계속 즐겼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노르딕 워킹’의 엄격한 규칙들을 발견했다. 작가의 현재 방식은 엉터리였다.
규칙을 모두 지키려 노력했다. 규칙에 얽매이다 보니 경치와 명상과 아내와의 대화가 실종됐다.
일주일 후 작가는 규칙을 포기했다. 사람의 몸은 직관적으로 스틱에 적응하고, 균형을 잡는다.
작가는 칼로리를 46퍼센트 더 소모하지는 못할지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걸으면서 긴장을 풀고 행복을
느낀다며 우리는 왜 매사 규칙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냐고 묻는다. 등산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무시하고
남의 페이스에 맞춰 무리하다 리듬을 잃은 사람이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참선과 고양이’에 대한 일본의 고사 이야기는 목적과 수단,
본말이 전도된 인간 삶의 모순을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
영화 <모세>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번쩍 들자 바닷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는 건
성서와 다르다. 신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말하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라고 말했고,
그들이 움직이고 나서야 모세는 지팡이를 들었다. 홍해가 갈라진 건 그 다음이다. 결국 길을 갈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길은 열리는 법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그 다음에는 욕을 가진 자
욕을 주고, 사랑을 가진 자 사랑을 주고, 칭찬은 칭찬, 증오는 증오를 준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만을 줄 수 있는 법인데
‘당신이 가진 것은 무엇이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남풍에 실려 먼 초지에 비를 뿌려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고 사막으로 내려온 어린 구름이 어린
모래언덕에게 사랑의 비를 두려움 없이 바침으로써 ‘오아시스’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을 읽을 때는
‘어린왕자의 길들이는 여우’처럼 가슴이 저민다. 방파제에서 작가가 손으로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는
갈매기의 체험은 사랑이 얼마나 기적을 만드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사랑이 불가능한 것을 변화시키고,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해 준다고 끝없이 되뇐다.
작가는 네팔에서 수도승을 만났다. 점심 때가 되어 승려는 바랑에서 바나나를 꺼냈다.
썩은 바나나여서 버렸다. 제때 쓰지 않아서 흘러가버린 인생, 이젠 너무 늦었으므로. 초록빛 바나나,
다시 바랑에 집어넣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인생이니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잘 익은 바나나, 이것이 현재다. 두려움이나 죄의식 없이 맛있게 먹는 법을 배우란다.
나이보다 훨씬 왕성하게 활동하는 브라질 노르마 할머니의 비결은 마법의 달력이었다.
그 달력에는 날마다 그 날짜에 일어난 좋은 일, 감사할 일이 한가지 적혀있었다.
달력을 보여준 당일은 ‘소아마비 예방 백신이 개발된 날’이었다.
삶은 뫼비우스 띠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며, 앞이 뒤고, 뒤가 앞이다.
사랑, 관용, 배려, 감사가 뒤섞여 돌다 보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다.
작가는 ‘신은 빵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도 버터 바른 반대 쪽이 바닥에 닿도록 하는 것에서조차
그것을 항상 보여주고 계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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