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만공사 최보기의 책보기 13 - 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지음 <인문학은 밥이다>


 인문학 바람이 분 지 꽤 되었다. 인문학의 범주가 해석에 따라 넓게는 천문학의 반대 편에서 인간을 다루는 모든 것부터 좁게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까지 분분하다. 유명 호텔마다 인문학자를 불러 강연을 듣는 조찬 CEO모임 한 두 개가 어김없이 열리고 있고, 동네 도서관과 공공기관에서도 주민들을 상대로 여는 인문학 특강이 줄을 잇는다.


 입심 좋은 문사철 전공학자나 유명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덩달아 여기저기 강연으로 바쁘다. 그런 학자 중 한 사람이 베스트셀러 ‘엄마 인문학’의 저자인 철학자 김경집 전 카톨릭 대 교수다. 책을 이야기할 때 결론 내기 어려운 질문 하나가 책의 근엄한 내용들과 저자의 실상이 차이가 클 때 그 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다. ‘책은 책이고, 사람은 사람이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이 옳지 않으면 그 사람이 쓴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읽지 않겠다’는 사람으로 크게 나뉘지만 누가 정답인 지는 결론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자 김경집은 두 가지를 살 만하다. 첫째, 그는 서른 살 무렵에 ‘25년은 배우고, 25년을 가르치고,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며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대로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만 25년 되던 해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지금은 충청도 해미에 있는 작업실 수연재에서 (저술과 강연을 하며) 나무처럼 사는 바람을 품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대중적인 인기가 상당한 어떤 학자의 경우 강연 한 번에 많은 돈을 주는 대기업들에 취해 강연료가 쥐꼬리일 수 밖에 없는 동네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의 강연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 작은 도서관 관장인 필자가 강연을 섭외하는 경우가 잦아 실제로 겪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대개 그런 곳일수록 인문학에서 소외된 서민들이 그들의 강연을 더욱 듣고 싶어 하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필자가 듣기로 김경집 인문학자는 ‘대기업에 취하는 순간 자신의 인문학은 망가진다’는 생각에 적은 강연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일반 주민 상대의 특강을 일부러 안배한다고 들었다. 그런 까닭에서 필자가 주최한 주민 인문학 교실에도 기꺼이 와서 강연을 해 주었던가 싶고, 그렇기에 그의 저서들은 항상 자신 있게 추천하게 된다.





 ‘인문학은 밥이다’ 책은 김경집 저자가 특별히 엄마들을 대상으로 “남자들의 조직사회는 경직돼 변화가 어렵다. 그런 남자들 대신 가정의 CEO이자 사관인 엄마들이 나서야 할 때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변화의 길은 인문학에 있다. 엄마의 서재로부터 섹시한 혁명을 일으키자. 인문학은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장식이 아니다. 미래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열쇠다. 그 열쇠를 아이들에게 쥐어주려면 엄마들부터 변해야 한다. 행복은 맞서 싸워 쟁취하는 것이다”고 열변하는 책 ‘엄마 인문학’을 내기 전에 쓴, 광폭의 인문학 교양서다.


 김경집 박사에게 인문학은 ‘문사철’을 벗어나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굉장히 넓은 범주의 학문이다. 왜냐하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도 결국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밥이다’가 철학, 종교, 심리학, 역사, 과학, 문학, 미술, 음악, 정치, 종교, 젠더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이유이다.


 서문에서 그는 “인문학은 지하수와 같다. 지하수는 지표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하수가 없으면 수많은 생물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인문학에 대한 투자도 지하수의 수맥을 관리하고 개발하듯 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투기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인문학이라는 지하수는 말라버리고 말 것”이라고 충고한다. 인문학서를 읽으려는 사람들의 독서에 대한 생각도 바로 이래야 한다는 것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가 말하는 대로 ‘부지런히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응용해 상대적을 낮은 임금으로 제품을 생산해 수출로 살았던 시대를 지나 사고의 확장과 발상의 대전환-필자는 이를 창의력으로 본다-을 발휘하는 열쇠가 인문학에 들어있다’는 것에도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인문학이 밥’일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미국 애플 사의 고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며 ‘잡스 마인드의 핵심은 히피정신, 자유정신이다. 인문학을 통해 정신적 자유와 인고의 시간을 충분히 겪어낼 여유가 있어야 양질의 성과가 나온다는 상관관계를 체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직원들에게 6개월, 1년 안식년을 주는 그런 기업문화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역할과 책임이 인문학자들의 몫이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인문학의 의도와 목표, 정체를 분명하게 밝힌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말미에 ‘질문은 힘이 세다. 인문학은 답을 가르쳐주는 학문이 아니다. 답이 하나인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한다. 이 또한 질문하는 힘을 기르면 정답을 찾는 힘도 세지는데 ‘인문학은 밥이다’를 읽으면 그 질문하는 힘이 세진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1부 마음의 깊이를 더하는 인문학 (철학, 종교, 심리학), 2부 진보하는 인류와 인문학(역사, 과학), 3부 감성을 깨우는 인문학 (문학, 미술, 음악), 4부 인문학은 관계 맺기다(정치, 경제, 환경, 젠더)까지 총 12장으로 구성됐다. 전체 640페이지로 좀 두껍지만 전공서적처럼 어려운 서술이 아닌 대중강연 수준의 글이라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게 읽힌다. 각 장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10~20여 권이 ‘충분히 간략한’ 설명과 함께 곁들여져 있어 ‘인문학 백과사전’ 격으로 서재에 한 권 꽂아두기를 권한다.



    북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