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사람? 사람보다 꽃!


“꽃의 제국”


강혜순 지음ㅣ다른세상 펴냄


‘자연과 우주의 오묘한 세계를 다룬 책을 소개할 때 늘 챙기는 명저 2권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와 “꽃의 제국”(강혜순)’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좋은 책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종합 평가를 한다면 이 2권의 책은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는 입장’이라고도 했다. 이 외에도 고정칼럼으로 책을 소개할 때면 어김없이 다루는 책으로 “상상력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푸른역사출판),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이 있는데 이 책들은 모두 이곳에 소개가 됐다. 필자로서는 이처럼 ‘구간, 신간’이라는 굴레가 없는 매체에 서평을 쓰는 일이 좋다. 출판 시점 상관 없이 정말 소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다.


강혜순의 “꽃의 제국”은 2002년 초판의 스테디셀러다. 이 책은 다음 3가지 점이 특히 유효하다. 첫째, 소위 ‘먹방’을 필 두로 야생화, 사진, 문학 등 ‘삶의 질’이 있는 주제들이 SNS를 휩쓸고 있다. 꽃을 공부하기 제격이다. 둘째,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종족 번식 전략’이다. 사회적 훈련과 교육을 통해 두뇌가 완성되는 인간과 달리 창조주의 프로그래밍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만 꽃들의 전략을 읽다 보면 복잡한 삶의 지혜로운 답이 있다. 셋째, 늦가을에 낙엽을 밟으며 ‘나무는 잎에 있는 영양분을 줄기에 모아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봄이 오면 질소 등 줄기에 저장했던 영양분으로 광합성을 함으로써 에너지(식량)를 생산하고, 번식을 꾀한다’는 식물학 상식도 알게 된다. 이는 아이 키우는 부모에게 더욱 유용하다.


식물은 2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했던 호모사피엔스보다 35억 년이나 먼저 태어났다.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서 동물의 ‘식량과 산소’를 틀어쥔 식물은 지구상 생명체의 99%를 점유한다. ‘식물인간’이라는 왜곡과 달리 그들에게도 ‘생각’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장수생물은 자이언트 세콰이어다. 이 나무는 산불로 주변 온도가 200도 이상 올라가면 씨앗을 터뜨려 번식을 꾀한다. 1미터에 달하는 껍질 속에 수분을 충분히 담아 산불을 견디어 낸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산 증인이다.


호사가들이 ‘나팔꽃씨는 자주 먹으면 몸을 헤친다’고 떠드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그 이유를 나팔꽃이 ‘암수한꽃’인 데서 찾는다. 암수한꽃은 하나의 꽃봉오리 안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갖추어진 꽃이다. 유전학적으로 열성 인자라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나팔꽃 입장에서 해석해보면 어떨까? 암수딴그루는 어차피 바람이든 벌이든 외부 요인의 협력으로 꽃씨가 퍼트려져야 한다. 꽃씨 방어 전략을 세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나팔꽃은 꽃이 훼손되는 순간 번식 없는 종말을 맞는다. 그러니 ‘함부로 나를 따먹다가는 너의 몸이 망가진다’는 무기를 갖춰야 하지 않았을까? 필자의 상상이다.


5월이면 경북 울진 불영계곡은 소나무 꽃가루(송홧가루)로 노랗게 물이 든다.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바늘구멍보다 작은 0.04mm의 암술머리에 안착시켜야 하는 이들 풍매화의 번식 전략은 ‘인해전술’이다. 하여 소나무 한 그루가 약 1조 개의 수술가루를 바람에 날린다. 금낭화나 얼레지 같은 꽃들은 주로 개미를 유인해 씨앗을 퍼뜨린다. 이들 식물들은 개미의 식량이 될 우유병(엘라이오좀)을 씨앗 껍질의 일부에 장착해 둔다.


날개가 몸통보다 작은 일벌은 초당 약 230번의 날개짓으로 꿀을 따 로열젤리를 만드는 중노동으로 수명이 줄 정도다. 인동초 꽃은 흰꽃과 노란색 꽃을 함께 볼 수 있어 금은화라고도 한다. 흰 꽃은 아직 수정이 안 된 꽃이고, 노란 꽃은 수정이 끝난 꽃이다. 노란 꽃에는 더 이상 꿀이 없다. 인동초는 꽃의 색깔을 변화시켜 꿀벌에게 꿀이 없음을 미리 알려준다. 꿀도 없으면서 꿀벌에게 ‘사기를 치면’ 꿀벌이 이듬해에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동초의 배려와 지혜로 둘의 공존이 가능하다. 참고로 제 철이 아닌데 꽃이 피는 경우는 ‘철이 없는 꽃’이 아니라 생명에 위기를 느껴 번식을 서둘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