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린이에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인천항의 역사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해요.


인천항이 처음 개항했던 1800년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의 인천항에 대해 설명해드릴게요!

일제의 식민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관할권이 일본에게 있었던 시기입니다.



▲1900년 제물포 포구 사진



1883년, 개항 후 외국과의 무역이 증가함에 따라

수출입 화물에 대한 관세 사무행정을 담당할 해관이 설치되었어요.

개항장에는 조계지가 설치되고 일본과 청국, 유럽의 여러 상사와 상인이 진출하여

경쟁적으로 상업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03년 제물포 건어물북어 하역장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을 분기점으로

인천항의 상업 활동은 일본 주도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1904년 인천부두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압적으로 위협하여

‘조선연해 및 내해 항행에 관한 약정서’를 통해 연안 항구에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받고

‘하천연안 자유항행계약문서’를 체결하여 기선 운영과 수운영업권 등의 강운권을 모두 장악하였습니다.


1907년에 이르러 인천항은 한국무역총액의 50%에 이르는

국제항으로 성장하였으며, 여객과 화물운송을 목적으로 한

연안항로, 국제항로(상하이, 따리엔, 오사카, 나가사키)의 운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이 이루어지고

인천항이 식민 경제 체제로 재편됩니다.

조선을 병합한 일본은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관제를 제정·공표하였습니다.

1912년 일체의 해사업무는 모두 체신국*이 관장하게 되었죠.


*체신국: 일제강점기 조선에 설치된 조선총독부 소속의 관청이다. 

조선에서의 우편, 우편환, 우체국 저금, 간이 보험, 선원 보험, 전신, 전화, 항로 표지, 선원 양성, 

수력 발전, 항공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였으며 항로, 선박, 선원, 전기 사업, 가스 사업의 감독을 관장하였다.



▲1920년대 인천항 야경



일제강점기 인천은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서

중공업과 군수산업의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해변매립, 도로확장, 행정구역 확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간 중 큰 변화는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이 

해수의 높이와 상관없이 출입 가능하게 한

이중 갑문식 선거 설비 공사가 이루어진 것이에요.



▲1918년 완공한 인천항 갑문



이 설비공사는 1911년에 착공되어 1923년에 준공된 대토목공사였어요.

축항이 준공되면서 인천항을 이용하는 선박도 증가하게 되었답니다.


1910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29년간

인천항의 총 무역액은 약 40배 신장되었어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조선우선주식회사를 남양방면으로 징발하면서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남중국과 남방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외항 선박으로 사용할만한 것들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에 의한 선박의 계획은

자재와 노동력의 부족, 운송 등의 제약으로 1945년에 중단되죠.

1945년 광복 이후, 인천항과 우리나라의 해상무역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다음 주에는 광복 이후의 인천항에 대해 알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