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 건조를 위한 노력과 환경

- 크루즈선 건조, 과연 못하는 것일까? 안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근대화되고 대형화 되면서 남긴 신화는 언제 들어도 경이감이 넘친다. 특히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를 인수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3사를 비롯하여 중소형 조선소들의 괄목성장은 우리나라를 세계 제1위의 조선산업 국가로 위상을 높여 놓았다. 그 중에서도 현대중공업을 일으킨 고(故) 정주영 회장의 500원 지폐에 담긴 거북선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가 되고 있다.

크루즈선을 포함한 여객선 건조 부문에서도 현대중공업이 그 시초를 놓았다.

1988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객선의 형태를 갖춘 화객선 ‘MS Americana호’를 건조하여 여객선 건조의 첫 획을 그었으나, 안타깝게도 후속선의 수주를 포기하여 명맥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첫 건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후속선을 대우와 삼성에서도 나누어 건조를 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으나, 이에 자극받은 조선업의 도전정신은 더 크고 화려한 크루즈선 건조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추격을 뿌리치고 확고한 조선 강국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일찍이 여객선 시장에 뛰어 들었으며, Ferry선 건조 세계 1위의 고지를 이미 점령하였다. 또한, 이미 자국 선주로부터 발주 받은 중소형 크루즈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었고, 그 여세를 몰아 ‘MS Crystal Harmony’를 수주하여 건조하였으나, 기술과 자재 선택의 어려움으로 후속선은 유럽의 조선소에서 건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국 선주로부터 수주한 ’MS Fujimaru’와 ‘MS Asuka’를 1990년과 1991년에 잇달아 성공적으로 건조 하였고, 꾸준한 연구와 개발을 통해 2004년 두 척의 11만톤 급 크루즈선을 건조하였다. (‘MS Diamond Princess’ / ‘MS Sapphire Princess’)

물론, 건조 도중 화재로 인하여 건조 순서가 뒤바뀌는 불상사도 있었으나, 성공적인 건조로 평가를 받았으며, 이에 고무된 일본 조선소는 유럽으로부터 또 다른 크루즈선을 수주하여 현재 건조를 하고 있다. (AIDA Cruise Line 2척 / 2015, 2016 인도 예정)

그러나, 이렇게 수주 및 건조에서 우리나라를 능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건조가격 증가와 무리한 저가 수주의 영향으로 향후의 수주활동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반면, 우리나라 조선업은 1990년 이후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진행하면서 크루즈선의 초기 단계인 Ro-Pax선을 수주, 건조하면서 점차 기술력을 쌓아 나갔다.

그리하여 대형 3사를 합쳐 20여 척의 Ro-Pax선 건조 실적을 가지고 있으나, 최근 불어 닥친 세계 경기 악화와 해운불황, 해양플랜트로의 사업 확대 등에 밀려 크루즈선 건조 계획을 철회하거나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조선협회를 주축으로 4개의 대형조선소(현대, 삼성, 대우, STX)와 조선기자재연구원 등이 참여하여 수많은 협력업체와 더불어 5년 동안 국책과제를 수행하며 꾸준히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양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소들의 사업포기로 인하여 이러한 기술은 사장될 위기에 놓여버렸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물론, 각 사 마다 경영 악화를 이유로 더 이상 투자가 곤란하다는 공통된 이유를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경영진의 단기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양프로젝트가 유행병처럼 확산 되면서 액면가가 수 조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조선소를 유혹하고 당장 계약금만 챙겨도 엄청난 실적을 가져다 주게 되자 단기 성과에 급급한 경영진으로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크루즈선 건조를 피하여 해양산업에 몰입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역시 기술력 부재로 인하여 외국 자본과 기술에 지배를 당하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으며, 최근 모 조선소에서는 설계 단계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손실이 수 천 억원에 이르는 등 악재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단기 성과에 눈이 먼 조선업 경영진들에 의하여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크루즈선 건조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0여 년에 걸쳐 힘들게 세계1등의 조선업을 이룩하였으나, 조선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크루즈선 건조는 해 보지도 못한 채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들에게 조선 왕국의 신화를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심란한 심경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반드시 크루즈선을 건조 해야만 진정한 조선강국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동안의 노력과 기술, 인력들이 모두 사장되어 버린다면 이 얼마나 큰 낭비이며 비효율인지를 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이제 바야흐르 크루즈선을 이용한 관광 산업이 눈덩이 같이 불어나고 성장을 하고 있는데, 조선업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딴전만 피우고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나라 조선업은 크루즈선 건조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조선강국의 꿈을 이룩하고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본 칼럼의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 동안 격려와 호응에 감사드립니다.


글. 김일석